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근처 이마트 트레이더스의 초마 짬뽕에서 점심을 먹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맛있는 짬뽕이었다.
기실 예전에 처음으로 초마 짬뽕이라는 걸 먹었을 때도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불맛을 좋아하는 아내 때문에 찾아갔던 홍대 삼거리 포차, 그 옆 건물의 초마 짬뽕 본점. 신혼집이 상수동이었던지라 츄리닝 차림으로 나와 털레털레 걸어서 찾아갔더랬다. 그때도 이미 유명했던 곳이라 한참을 줄을 선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에 비해 그냥저냥 한 맛에 실망했던 우리. 이후로는 거의 들른 적이 없었다.
여하튼, 그날 짬뽕으로 배가 부른 채 집으로 걸어가며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예전에 홍대 힙합 클럽 NB가 있었던 자리를 지나가며 반가워했다.
"나는 여기에 처음 와 본 게 대학교 1학년 때였어."
스무살 지방 촌놈이 서울에 올라와서 무얼 해 볼까. 클럽이라는 델 가 보겠다며 고향 친구들과 함께 난생처음 홍대에 왔던 것. 우리는 YG의 양현석이 운영한다고 알려졌던 클럽 NB에 찾아갔다. 이렇게 들어가는 게 맞나, 하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 클럽 입구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그동안 몰랐던 낯선 세계를 맞닥뜨렸다. 그때 한창 유행했던 비욘세의 '크레이지 인 러브'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잘생기고 예쁜 청춘들이 달뜬 얼굴로 한데 엉켜 춤을 추고, 저어기 한편에는 원타임의 테디를 비롯한 몇몇 가수들이 보였다.
"나 원타임 엄청 좋아했어."
나의 오래된 추억담을 듣고 있던 아내가 말했다. 아내는 YG, 아니, 1998년이었으니 당시에는 '양군기획'에서 론칭한 힙합그룹 원타임의 초대 팬클럽 출신이었다. 원타임을 뜻하는 'One Time for Your Mind'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써진 하얀 수건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아이템들도 소장했었다고. 그뿐만 아니었다. 원타임 이전에 지누션의 팬이기도 했고, 지누션 이전에 데뷔했지만 소리 소문 없이 망해버린 킵식스도 응원했단다. 그야말로 YG의 처음부터 함께했으니 YG 패밀리와 다름없었다. 결혼하면서 가져온 소장 음반들을 살펴보니 과연 원타임, 세븐, YG 패밀리 베스트 앨범뿐만 아니라 한국 힙합의 큰 형님이라 할 수 있는 D.O. 이현도의 앨범까지 있었다. 한때 힙합전사였던 아내에게 물었다.
"그럼 '마자 플라바'라고 기억나?"
"당연히 기억하지. 지누션이 했던 옷 메이커 말하는 거지?"
"맞아 맞아. 내 친구 J 알지? 걔도 마자 플라바 패딩 하나 갖고 있었어."
대화는 어느새 내 친구 J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아내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소싯적에 힙합에 빠져있던 때가 있었다. 세기말이었던 시절에는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던 드렁큰타이거를 비롯해서 <1999 대한민국> 같은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들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 친구 J 역시 마찬가지였다. J 덕분에 에미넴도 처음 듣고 투팍이며 노토리어스 B.I.G. 등도 알게 됐다. 뜨거웠던 시절이 지나고 시들해진 나와 달리 J는 꾸준하게 힙합에 천착했다. 우리 고등학교 최초의 힙합동아리를 만들었고, 초보 티가 풀풀 나는 조악한 비트에다 가사를 얹은 자작곡도 썼다. '대도시' 부산까지 가서 당시 지누션의 션이 론칭한 힙합 패션 브랜드 마자 플라바의 옷을 한 아름 사 들고 오기도 했다. 그거 꽤나 비싼 옷이었는데.
"그래서... 인생 첫 클럽은 재밌었어?"
아내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봤다. 나도 친구들도 이런 곳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우선 바 테이블에 앉아 입장할 때 받은 쿠폰으로 맥주를 한 병 마셨다. "스울 아들은 춤 잘 춘데이." 같은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다가 마침내 플로어로 나갔다. 여까지 왔는데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잖은가. 우리는 각자 일렬로 나란히 서서 둠칫 둠칫 어색한 동작으로 춤(이라고 부르기엔 뭣한, 그렇다고 가만히 서 있는 건 아닌, 흐느적거리는 동작의 무언가)을 췄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뒤에 바짝 붙었다. 자리가 비좁아서 그런가. 앞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그런데 뒤에 있던 사람 역시 한 발짝 내밀었는지 또 내 몸에 붙었다. 그리고 부벼대는 것 아닌가.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봤다. 낯선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여자였다는 대목에 이르자 아내가 큰 소리로 되물었다.
주저거리며 이야기를 이어서 말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여자를 피해 구석 어딘가로 슬금슬금 도망쳤다고. 그럼에도 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벌게진 얼굴을 가리려는 어색한 미소를 띤 채, 계속해서 춤 같지도 않은 춤을 추면서, 나한테 그런 게 아닌데 괜한 오해를 했나하고 계속해서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내 대답을 듣고 아내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촌놈 맞네."
아내의 웃는 모습을 보니 왠지 얼굴이 홧홧해졌다. 이제 마흔살이 된 나는 스무살 때의 촌티를 벗어냈을까. 그렇다고 해서 지금 클럽에 간다 한들 부비부비를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