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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딩 May 14. 2021

해외에서 일하며 겪어본 다양한 일들과 상사 후기 -2

이 구역에서 미친 X는 너야.

기억에 남는 몇 건을 차례로 올릴 예정입니다.


내 첫 회사는, 작은 현지 회사로, 건설업계 하청의 하청 어딘가에 머물러 있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관리했다.

회사에 입사했을 당시, 시스템이라는 것은 전혀 없었고, 모든 것이 다 매뉴얼적으로 흘러가야 하고, 새로 구축해야 했다.

싱가포르에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만으로 기뻐서 입사한 게 화근이었을까, 정말 배고프고 고달프고 힘들었던 일들은 첫 회사에서 많이 발생했었다.



내 본성은 매우 느긋하다. 

머릿속으로 이미 그려지는 그림이 있어서 별로 서두르지도 않고, 항상 내 느긋함을 나도 잘 알기에 미리 일을 시작해서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웬만한 것을 이해하기도 하고 화도 잘 안 나고, 안 내는데, 첫회사에서는 동료들에게 인내심의 한계를 매우 빈번하게 시험당했다.


첫회사에서 일이 복잡해지거나 꼬이면, 내가 늦어서, 내가 잘 못해서, 혹은 잘못을 해서가 아니고, 주문서가 늦어서, 주문서를 받지 못해서였다.


큰 해외 발주들은 달마다 매번 주문하라고 상기시켜줬고, 작은 데일리 발주들은 매주 재깍재깍  달라고 알림을 보챘다.

이렇게 매번 보채고 챙겼는데 늦어지고 이상한 물건이 발주가 되면 더 이상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난 내 일을 똑바로 하고 있었다. (이걸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내 잘못이라 생각했기에.)



사건 2. 프로젝트 발주

2018년 3월


현장 프로젝트 관리 동료가 나에게 주문했던 물건이 언제 오냐고 물었다.


나는 이미 주문을 했고, 들어올 예정인 물건들은 모두 와츠앱 메시지랑 전화를 돌려놨는데 물어보길래 무슨 프로젝트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내가 아직 주문한 적도, 받아보지도 못했던 프로젝트 이름이었다. 프로젝트 이름을 C라고 하겠다.


혹시라도 내가 주문서를 빠뜨렸나 몇 번을 다시 확인하고, 언제 주문했냐고 물어보니 2월 초에 A주문서를 줄 때 같이 주문했단다.


그런데 내 기억상, 확실하게 2월 초에는 A 프로젝트 주문서만 주었지 C 프로젝트 주문서는 받은 적이 없었다.

    

와츠앱으로 들어가서 기록을 확인해보니, 2월 말에 해외 주문할 것 있냐고 묻자 B 프로젝트와 C 프로젝트를 주문해야 된다고 했다.


내가 A 프로젝트를 주문한 때는 2월 초였고, C 프로젝트는 2월 말에 C 주문해야 한다고 했으니, 당연히 준 적이 없는 것이다.


그 기록을 캡처해서 나한테 아직 주문서를 준 적이 없다고, 내가 A 프로젝트 주문했을 때가 2월 초인데. 네가 이야기한 C 프로젝트는 2월 말이라고, 어떻게 네가 주문서를 같이 줄 수 있겠냐고 말했다.


그러니 하는 말이,


나중에 준다고 말했단다. 지금 자기 컴퓨터 안에 있단다. 아직 보스 승인을 받지 못했단다.


진짜, 내가 어떻게 일을 하라는 것이지?


목록도 안 줬으면서, 심지어 보스 승인도 안 받았으면서 어떻게 주문을 하라는 것인지.




사건 3. 협업이 뭐야?


가끔 말레이시아 동료가 말레이시아 거래처를 알아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보스한테만 가격정보, 카탈로그를 넘기고 나한텐 일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말레이시아 동료에게, 네가 찾은 거래처 정보 좀 알 수 있을까? 물으면, 


내가 찾은 것인데 네가 왜 뺏어가?라는 느낌으로 엄청 귀찮다는 식으로 보스에게 이미 다 줬는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구매 때문에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보스가 정보 파일을 다른 데에 데 놓고 왔어라고 말하고 정보메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같은 레퍼토리가 여섯 번 정도 발생했다.


거래처 찾은 공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구매 담당자는 나니까 나에게 간단하게 FYI라고 메일을 남겨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동료는 아니었나 보다. 그럼 그대가 구매총괄도 맡아서 하시지 그러셨어요.


매번 전화해서 정보를 보내달라 요청해도 정말 안 보냈었으니 너무 고의적이었다.




사건 4. 책임감이 뭐야?


같이 일했던 중국 동료가 너무 무책임했다. 아니면 그냥 엿을 먹이려는 것이었을까.


내가 입사하기 전의 모든 중국 주문은 중국 동료가 담당했었다.(회계와 중국 발주 담당)


그런데 그 동료는 내가 입사하면서, 내가 중국어를 할 줄 아니, 자신은 회계 쪽만 집중하고 싶다고 구매에서 손을 뗐다.(나는 원래 구매총괄이 아닌, 싱가포르 내 구매만 담당하는 포지션으로 입사한 것인데, 입사한 지 2주 만에 구매를 총괄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생겼는데, 회사 메일 시스템에서는 2013년도의 메일까지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스크롤을 수동으로 내려야 2013년도까지 볼 수 있는 것이지, 검색으로 메일을 조회하면 2015년도까지 밖에 안보였다.

회사 컴퓨터에 저장돼있는 해외 주문서와 국내 주문서도 2013년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내 전임자는 자료 정리를 일체 해놓지 않았었다.

오히려 정리해놓았던 자료도 지우고 갔다..(이로 인해 첫 몇 달을 생고생했다)


이런 상황으로 2013년 이전의 해외 구매 기록은 찾기 힘들었다.


수리해야 할 프로젝트가 생겨서 견적서를 요구해야 하는데 그 프로젝트 발주는 2010년도였다.

이미 그때의 기록은 메일도, 컴퓨터에도 남지 않았고, 찾으려면 수많은 종이 주문서를 뒤져야 했다.


이 물건 주문한 지 너무 오래전이라 찾기가 어렵다고, 거래처 어디 있는지 알려줄 수 있냐고 중국 동료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니 그 동료는 내 전임자에게 참고 메일을 다 보냈다고 답했다.


말이 안 되었다.

이메일 기록은 2013년 3월 29일부터 시작하는데 전임자에게 참고 메일을 보냈다 하니.


또, 내 전임자는 2013년 입사였는데, 2010년에 발주를 전임자에게 메일을 보냈다는 것도 너무 말이 안 되었다.


그래 놓고 거래처를 찾는데 시간이 걸려서 보스가 중국 동료에게 정보 좀 알려달라 말 한마디 하니, 

예쓰 보~오스 하고 3분도 바로 안돼서 정보를 프린트 해왔었다.


그냥 주기 싫었던 것이었다.




첫 회사에서는 동료들이 매번 이딴 식으로 막무가내로 나올 때마다 속상하고 화가 났었다.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데 내가 어떻게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외의 정말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심기만 불편한 일들로, 다른 좋은, 즐거운 일화로 넘어가 보려고 한다.


해외에서 일하며 겪어본 다양한 일들과 상사 후기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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