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계속 바뀐다. 불평하는 당신만 빼고
가족들과 술 얘기를 하다 보면 한 번씩 나오는 웃기고도 아찔한 에피소드가 있다.
벌써 30년도 전 이야기이다. 때는 바야흐로 남자들이 밖에서 회식하고 맥주 한두 잔 했을 때는 '이 정도야' 하고 운전대를 잡던 시절이다. 경찰들은 한술 더 떠 검사 중 먼저 은근슬쩍 눈치를 주고 여기에 맞추어 몇만 원 찔러주면 통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어떤 경찰이 어디에서 얼마를 받고 음주운전자를 보내줬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뉴스에 나오곤 했다.
그 예전에 가족들이 밖에서 식사를 한 어느 날 고기 구우면서 맥주가 빠질 수 있나. 아빠는 그날 정말 맥주를 '한 잔' 했다고 한다. 가까운 동네였기에 금방이겠거니 하고 차를 타고 돌아가는데 아뿔싸, 음주 측정에 딱 걸린 것이다. 소심한 우리 아빠 엄마는 측정 순서가 오기 전부터 덜덜 떨었다. 측정기가 찾아온 순간! 아빠는 '저는 못 붑니다!'를 외쳤다고 한다. 무려 1시간 동안 경찰과 실랑이를 하고 - 이미 엄마도 경찰 편이 되어 제발 불라고 사정을 한 끝에 - 아빠는 체념하고 측정기를 불었다. 그리고? 아빠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단속 기준보다 낮았고 결국 우리를 태우고 안전하게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우스운 에피소드가 될 수 있었지만 오늘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친구가 웃으면서 '어제 맥주 딱 한잔만 하고 돌아가는데 경찰한테 들켰지 뭐야! 운도 지지리 없지!!' 한다면? 그 친구를 보는 당신의 눈은 완전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음주운전을 한 연예인들은 퇴출을 면치 못한다. 2020년 유명 배우 한 명이 음주운전에 적발되었다.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8% 이상으로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그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방영 중인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이미 촬영된 무려 16회 분량에서 그는 편집되었고 같은 소속사의 정우성이 대신 촬영에 합류했다. 잘 나오던 등장인물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니 드라마가 시트콤이 되는 순간이다. 이미 찍은 촬영분도 못쓰는데 재촬영까지, 제작사의 경제적 손해도 막심했을 거다. 그럼에도 음주운전 전과 배우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제작사와 방송사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지금은 '음주운전은 살인미수'라는 대중적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변화한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하는 동시에 더 강화한 건 법의 변화다. 2018년 11월 29일 윤창호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음주운전 기준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인 법이다. 당시 음주운전 사고로 숨진 윤창호 씨의 친구들이 직접 나서 법의 변화를 이끌어낸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군에서 잠시 나와 휴가를 즐기던 그는 술을 먹고 운전한 한 명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엄연히 법이 금지한 음주운전을 하고 누군가의 빛나는 청춘을 앗아갔는데 기존의 처벌은 과연 충분한 책임을 묻고 있나? 사람들은 공분했고 결국 법 제정이라는 큰 진척이 일어났다. 인식 변화와 법의 변화. 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상을 바꾼다.
회사에서도 더 전엔 회식 때 신발에 술을 따라주며 마시라고 권하고, 막내는 팀장의 재떨이를 가져다 비우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정말 다 바뀌었을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됐다. 이제 직장 내에서 누군가에게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는 불법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회사에서 이 불법 행위는 모두 사라졌을까?
불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선 처벌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의 회사에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특정하는 음주측정기가 없다. 객관적 수치인 혈중 괴롭힘 농도가 없으니 판단의 키를 가진 회사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고의적 괴롭힘이 업무상의 '고됨'으로 치부되어버리는 거다.
그 시절 경찰들은 몇만 원에 양심을 팔고 음주운전자들을 보내줬다. 그렇다면 회사는 얼마나 이 문제에서 양심적일까? 직장 내 괴롭힘을 회사에서 인정하는 것은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이다. 또한 사무실 내에서 이루어진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 그러니 회사에서 가해자의 편을 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회사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괴롭힘을 인정할 거란 생각은 운전자 옆 보조석에 앉은 사람에게 음주측정기를 쥐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직장 내 괴롭힘 법이 출범된 지금도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이 여전히 나타나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요즘 애들은 참 좋은 문화에 살고 있지 않느냐고, 신발에 술 따라먹으라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한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직장 내 괴롭힘은 명백한 범죄이다. 위법 행위를 했다면 엄중한 처벌을 받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설자리가 없어진 연예인들처럼 더 이상 구시대적 문화를 운운하며 범죄를 방조하는 개인들에게 설자리를 주어선 안된다. 더 이상의 관용은 필요 없다. 회사가 하지 않는다면 곁에서 지켜보는 우리라도 공동의 공간에서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 괴로움을 주는 사람에게는 강력하게 퇴출을 선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