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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치리 Sep 17. 2021

아이가 효도하길 바라는 나, 이상한가요?

"일단아~ 태어나면 엄마한테 효도하자. 알았지?" 


배를 쓰다듬으며 종종 하는 말이다. 친구들이나 부모님한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 있다. 나는 나중에 일단이가 효도했으면 좋겠다고. 


그럼 다들 웃는다. 뱃속 아기한테 벌써 그런 기대를 하는 내가 웃긴가 보다. '효도'라는 말이 이 시대에 안 맞는 말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고.   


엄마는 나한테 이런 말도 덧붙였다. 

"그냥 건강하게 커주기만 해도 그게 효도지."


아닌데. 건강하게 크는 것과 별개로 나는 일단이가 효도했으면 좋겠는데. 

조금 이상해 보일지언정, 아이가 효도했으면 좋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데는 사실 이유가 있다. 


외국에서 만삭으로 독학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려 애쓴 언니를 떠올려본다 



몇 년 전, 아이 둘을 키우는 사촌 언니와 대화하다 뜻밖의 쾌감을 느꼈는데 

언니의 이 말 때문이었다. 


"난 우리 아이들이 나한테 잘했으면 좋겠어.  

 뭐 거창한 걸 바란다기보단 내 노고를 이해했으면 좋겠어."


맞벌이면서 독박육아까지 하는 언니가 몇 년 새 홀쭉해진 얼굴로 마주앉아 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간 많이 힘들었을 시간이 떠올라 마음 아팠지만 한편으론 멋있었다.

오, 엄마도 힘들다는 말을 저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구나! 자녀에게도!  


언니는 어릴 때부터 나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커리어 우먼'이 꿈이라고 말했던 언니는 근사한 회사에 다니다가, 다른 꿈을 펼쳐보기 위해 미국에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했다. 


커리어를 어떻게 이을 수 있을지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어떻게든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위해 만삭의 몸으로 미국 회계사 시험을 치뤘고 해냈다. 


피곤에 찌들고 지칠지언정 선택했으면 밀어붙이는 사람이고, 

그러다 안 되면 과감히 방향을 바꿀 줄 아는 사람. 그러면서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 


나도 조카들이 언니의 노고를 알아야 한다고 끄덕였다. 

누군가는 엄마의 노고란 당연한 거지, 애들이 굳이 알아야 하냐며 어이없어 할지라도. 


이 시대엔 특히, 부모가 아이에게 뭔가를 바란다는 게 꽤 되바라진 발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부모라면 당연히 아이를 위해 자신의 삶은 어느 정도 내려두어야 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건 부모답지 않다는 시선. 

특히 엄마들은 이런 시선이 좀 더 신경 쓰인다.


'엄마가 되었으니 전처럼 일하려는 건 욕심 아니야?'

'엄마가 되었으니 그정도는 감내해야지.' 


대놓고든, 은근히든 곳곳에서 느껴지는 시선.  

심지어 자기 자신을 이런 시선으로 바라볼 때도 많다. 나 역시 자유롭지 않다. 아직 출산도 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욱더 내 노고를 아이들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언니의 말은 시원했다. 

부모와 자녀 관계 역시 주고받음 위에서 깊어진다며, 

그걸 너무 부담스러워 하거나 피할 필요 없지 않냐는 말에 또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부모는 정말 자녀에게 기대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부모는 기대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갈등하거나, 엉뚱하게 표출하는 것보단

깔끔하게 인정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자녀와의 관계에도 더 도움되지 않을까. 


물론 그 바람이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하는지는 신중해야할 문제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바람이 자녀에게 폭력이 되는 적지 않은 사례를 알고 있다. 


일단아, 언젠가 엄마의 노고를 이해하는 그런 사람으로 크렴



내가 일단이에게 기대하는 효도란 아픈 어깨를 안마 받거나,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로 안부를 물어봐 주거나, 돈 많이 벌어 여행 보내주면 좋겠다는 그런 게 아니다. 


그런 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나는 훗날 일단이가 엄마아빠라는 존재를 한 명의 사람으로 깊이 공감하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그 연장선에서 나한테 전화도 하고, 시간도 함께 보내려고 한다면 고마운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내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고, 

그 덕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퍽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며칠 전 길을 걷다 키가 큰 20대 청년을 봤다. 

나랑 10살 정도 차이날 뿐이겠지만 이젠 소년을 보든 청년을 보든 자연스레 일단이를 대입해보게 된다.


일단대디와 나를 닮아 일단이도 키가 저 정도로 크겠다는 생각을 하고나니, 

문득 우리 일단이는 저 무렵의 나에 대해선 정말 알 길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 역시 엄마아빠의 어떤 시절을 영영 모를 거란 걸 새삼 깨닫는다. 


그날 밤은 잠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모르는 엄마아빠의 인생과 꿈과 굴곡들을 더듬더듬 직잠해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가 알기 전의 부모님은 물론이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부모님도 사실은 아는 게 아니었구나- 깨닫는다. 

그간 내가 이해한 세계는 참 얄팍했구나- 돌아본다. 


임신은 모체에 좋은 영향은 미치지 않는 줄로만 알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상상력만큼은 키우나 보다. 

날 때부터 '아빠', '엄마'여서 다른 시각으론 마주하기 힘들었던 두 인간을 낯설게 보는 경험은 

자연스레 더 많은 이들로 확장된다. 


먼 훗날에야 만날 일단이의 미래도 그려 보게 되고 

지나가는 임산부, 아기들, 노인들, 청년들이 하나하나 다 이야기를 가진 존재로 다가온다. 


일단이 덕인지, 요즘 내 상상력이 커졌다 기분 좋은 일이다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말은 너무 거창하고, 

아이 낳지 않은 사람에 대한 삐딱함이 느껴져 거북하다.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상상력이 커질 가능성, 

다른 세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질 가능성은 커지는 것 같다. 

개인에 따라선 이렇게 타인의 입장에 서보게 됨으로써 더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도 커질지 모른다. 


이런 경험을 하다보니, 일단이도 언젠가 나에 대해 상상력을 펼쳐주길 기대하게 된다. 

아, 아이를 낳길 바란다는 뜻은 아니다. 꼭 아이를 낳아야 이런 경험을 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 금지! 


그저 '엄마', '아빠'라는 가장 익숙한 존재를 낯설게 바라보는 경험을 함으로써 우리 일단이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덕에 나한테 전화도 자주 하고, 가끔 좋은 식당도 데려가 주면 거절하지 않을게. 

일단이가 어느덧 엄마의 꿈과 굴곡과 인생 구석구석을 상상할 수 있게 됐구나- 싶어 뿌듯해할게. 


이게 내가 바라는 효도다. 

그러니까 일단아, 얼른 태어나서 엄마한테 효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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