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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치리 Sep 22. 2021

진통 걸어준다는'아빠주사',들어보셨어요?

출산에 대한 몹시 이상하고 수상한 것들

40주 0일. 언제 오려나 싶었던 출산 예정일이 오고야 말았다. 

36주 이후부턴 매일 언제라도 나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긴장 상태였다. 


하지만 뱃속에 있는 분은 아무래도 느긋한 성격인 듯. 

결국 출산 예정일까지 별다른 소식도 없고.. 방 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맘카페엔 37주~38주 사이에 출산한 후기글도 많다.

제왕절개는 보통 36~38주 사이에 수술을 잡고, 

자연출산이라 해도 경산맘들은 40주보다 앞서 출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40주 이후에 출산할 가능성이 높은 나 같은 초산맘은 괜히 초조해진다.

사실 아기 크기가 너무 크거나 작지 않고, 산모 몸에 별다른 이상 증상이 없으면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닌데도. 


자궁경부가 열리고, 아기가 내려오게 하는 의학적 출산 처치는 마땅치 않다. 

그래서 맘카페엔 출산을 기다리는 초조한 맘들이 각종 민간요법 후기를 공유한다.   


산책, 임산부 요가, 적당한 짐볼 운동은 의사도 추천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쪼그려 앉아 장시간 걸레질하기, 100층 이상의 계단 타기, 방방 뛰어오르는 정도의 짐볼 운동 등은 릴렉싱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임산부에게 무리를 줄 뿐 아니라, 잘못하면 태반이 분리되는 등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과한 운동을 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조심하세요ㅜㅠ)


나의 지인은 진통 걸리게 해주는 발바닥 혈을 알려주기도 했다. 

알고 보니 '위키하우' 페이지에도 이 혈에 대한 소개가 있다. 


자연진통에 도움을 준다는 혈자리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눌러볼 순 있는데 한의학의 많은 것이 그렇듯 이것 역시 서양의학의 관점으로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진 모르겠다. 


여러 민간요법 중 가장 황당한 건 이른바 '아빠 주사'. 성관계다. 

성관계를 하면 자궁이 수축돼 진통을 걸어준다는 원리인데 글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막달엔 자연스럽게 아기집이 자궁에서 떨어지도록 되어 있고 자궁경부도 조금씩 열리는 중이라 

감염 위험 등이 있다며, '아빠 주사'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부터 문제라고 지적하는 글을 본 적 있다.


이밖에도 파인애플, 달맞이꽃 차 등 진통을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음식도 있다. 


파인애플에 있는 브로멜린이라는 효소가 자연진통을 촉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배에 오래 있으면 양수가 줄어 아기가 힘들어진다.

아기 피부에서 떨어져 나온 태지가 섞여 양수가 탁해지기까지 한다. 

뱃속에서 더 자란 태아는 나오기도 더 힘들다. 당연히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좋지 않다. 

민간요법에라도 기대고 싶어질 수밖에. 


그러고 보면 21세기에도 출산 관련한 의학 처치가 이렇게까지 덜 발달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불임은 없고 난임만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눈부시게 발전한 임신 시술에 비하면

출산은 발전이 너무 더딘 것 아닌가. 


출산 방법을 선택할 때도 비슷한 난감함에 부딪힌다.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옵션은 적고, 열이면 열 대부분 병원에 모든 걸 맡길 수밖에 없다. 

병원과 연계된 조산원이라든가, 가정 출산을 돕는 실력 있는 조산사 등을 구하기 쉬운 해외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임산부마다 몸 상태도 다르고, 원하는 출산 형태도 다르다는 전제 자체가 사라진 느낌이랄까. 


해외 유저들이 많은 임신 관련 앱을 보다 보면, 

'원하는 출산 방법을 기록해둬라. 의료진 혹은 조산사와 공유해 원치 않은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조언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병원 입원-'3대 굴욕(내진-제모-관장)'-무통 주사-회음부 절개 및 후처치로 이어지는 분만 과정만이 유일한 선택지인 나로선 박탈감이 크게 느껴진다. 


심지어 한국 대부분 산부인과는 제모와 관장, 무통 주사, 회음부 절개 등이 너무 당연해서 사전에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응, 그거 나)  


대안을 찾아보다 보면 그건 그거대로 한숨이 나온다. 집 근처에 괜찮은 조산원도 없고, 출산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은 조산사를 찾으려니 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간혹 눈에 띄는 조산원이나 '자연주의 출산'을 하는 병원은 대체로 종교적 색채가 짙어 그건 그거대로 물음표가 남는다. (모든 '자연주의 출산'이 종교적인 건 아니에요)


'자연주의'라는 말이 어쩐지 믿음직하지 않다. '가족중심 출산' 이런 말이 난 더 마음에 든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전문가들은 여전히 자연분만이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좋다는 데 동의한다.

몸의 회복뿐 아니라, 산후우울증 등 정서적인 부분에서도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산모와 가족을 위한 다양하고 안전한 자연분만 방법이 더 많아져야 마땅한 것 아닌가.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욕구에 따라 서비스가 다양해지는 게 맞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병원 독점이 될 수 있느냔 말이지...


다양한 선택권을 존중하는 대신 병원 중심, 수술 중심의 흐름을 만들어

병원 입장에서 더 효율적이고, 이윤 높은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는 건 아닐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게다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막 태어난 아기와 엄마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10분이다.  병원에 있는 동안 면회도 불가능. 



국내 분만 비율은 자연분만이 6, 제왕절개가 4 정도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지난 몇 년간 제왕절개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한국의 제왕절개 비율은 OECD 가입국 가운데 2위로 상당히 높다.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여성들의 선택권도 최근에야 폭넓게 존중받고 있다. 

무조건 자연 분만해야 한다는 부담과 압박은 필요한 상황인데도 제왕절개를 고민하게 하곤 했다. 


산모의 선택권이 커졌다는 차원에선 제왕절개 비율 증가에도 의미는 있다.

하지만 산모가 소외되지 않는 출산이란, 단순히 제왕절개냐 자연분만이냐를 선택하는 것에만 한정되는 건 아닐 거다.


장소, 방법은 물론이고 듣고 싶은 음악, 선택할 의료 처치, 함께할 사람들 등을 산모가 선택할 수 있는 출산. 

그런 출산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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