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일을 돌아보며 배운 것을 적어본다.
모유와 분유를 혼합한 '혼합수유'를 한 지 80일에 이르렀다. 출산 준비할 때 수유만큼 어렵게 느껴지는 건 없었다. 내 가슴에서 '먹을 것'이 나온다는 게 영 상상하기 힘들었고, 도통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고통과 행복, 냉탕과 열탕을 무수히 오가며 모유수유한 지난 80일. 도저히 해내지 못할 것 같았던 '100일 모유수유' 목표 달성을 코앞에 둔 지금, 나는 스스로가 퍽 대견하다. 완모도 아니고 혼합수유고, 1000일도 아니고 100일이지만!
지난 80일을 돌아보며, 미리 알았다면 조금 더 수월했으리라 생각하는 것을 적어본다.
수유 관련 참고 자료
유튜브 채널 '맘똑티비',
책 <삐뽀삐뽀119소아과>, <모유수유가 처음인 너에게>, <육아상담소 모유수유>
출산 < 모유수유
내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이렇다. 자연분만의 고통도 어마어마하긴 했지만 어쨌든 모유수유보단 짧게 끝났다.
그냥 가슴만 내어주면 되는 줄 알았던 모유수유는 나의 인내심을 끊임없이 바닥냈다.
우선 초기의 가슴 통증. 출산 2-3일 만에 가슴이 돌처럼 딱딱해질 거란 말은 누구도 해주지 않았다. 그나마 조리원에서 가슴 마사지를 열심히 받으며 아기에게 젖을 물리려 애쓴 덕에 아주 심한 편은 아니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마사지 방법, 신랑이 해줄 수 있는 마사지 방법을 배워 열심히 한 게 큰 도움이 됐다. 마사지받으면 비명이 절로 나오지만 안 받으면 더 아프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다. (나는 마사지받으면 다들 시원해진다고 해서 마사지받을 때 엄청 아플 줄 몰랐다)
초기 가슴 통증이 가라앉을 무렵엔 유두가 헐기 시작했다. 아기가 처음부터 유두를 깊게 잘 물진 못하기 때문에 유두와 유륜은 계속 상처가 난다. 유두 보호크림(라놀린)은 필수다. 나중엔 옷만 스쳐도 아파서 보호크림을 바른 뒤 가슴을 훤히 내놓고 있어야 했다. 신랑에게 이해를 구하자. 고통의 크기가 민망함의 크기보다 훨 커서 어쩔 수 없다.
50일쯤이 됐을 때 마침내 아기도 수유에 익숙해지고 더는 유두도 아프지 않았다. 대신 아기의 밥줄이 된 만큼 먹는 것도, 다니는 것도 제한된다. 출산만 하면 맘껏 마시려 했던 맥주는 물론, 고춧가루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도 먹을 수 없다. (매운 음식 먹으면 아가 똥꼬가 빨개진단다)
젖을 물리며 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문득 우울감이 밀려오는데, 산후 호르몬까지 더해져 특히 초기에 조심해야 한다. 자유로웠던 지난날이라든가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생각은 최대한 하지 않고, 아기와 몸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가능한 한 감사히 여기며 집중하려 한 게 도움이 됐다.
모유수유를 지속하려면 멘탈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 자꾸 좋은 점을 생각하는 게 나를 위해 좋다. 아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맘마를 주고 있다는 뿌듯함도 있고, 나에게 꼭 안겨 열심히 쪽쪽 거리는 아기를 보며 사랑스러움에 사르르 녹기도 한다.
모든 것이 낯선 아기에게 엄마의 심장소리와 젖 냄새로 가장 원초적인 안정감도 줄 수 있다. 시각보다 후각과 청각이 더 발달한 아기는 다른 사람은 몰라봐도 엄마는 알아보는데, 젖 냄새와 심장소리 덕이라고 한다. 그러니 폭 안고 젖을 먹이는 일은 내가 너의 엄마라는 걸 알려줄 수 있는 첫 방법인 셈이다.
모유수유의 이러한 장점을 가져가면서, 분유수유의 장점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게 혼합수유. (바꿔 말하면 모유수유의 어려움과 분유수유의 어려움을 모두 갖고 있기도...)
혼합수유를 하면 분유는 아빠가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엄마가 쉴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우리 집의 경우 저녁시간이나 주말엔 일단대디가 분유수유를 책임지고 있다. 아기와 아빠가 애착을 쌓기 좋고, 아빠로서 뿌듯함도 크게 느낄 수 있다. 엄마맘마와 아빠맘마 모두를 먹으니, 아기도 기분 좋지 않을까? ㅎㅎ
이외에도, 상황에 따라 모유와 분유를 활용하기 쉽다는 것도 혼합수유의 좋은 점이다. 분유는 소화를 위해 정해진 양을 정해진 시간에 맞춰 먹여야 하지만 모유는 좀 더 유연하게 먹일 수 있다. 실제로 모유는 단순한 밥 이상의 의미이기도 하고. 특히 소화기관이 미숙하고, 자주 보채는 신생아 시기에 모유수유는 매우 유용했다. 단, 아기가 울 때마다 가슴을 물리는 건 자제해야 한다.
지난 글에도 썼지만 모유수유를 하고 싶다면 가능한 한 빨리, 자주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게 좋다. 아기가 먹는 만큼 가슴에 젖이 차오르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차오른 젖은 제때 비워야 가슴도 아프지 않다.
주변을 보면 ‘젖이 잘 안 나와서 한 달 주고 말았다’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데, 첫 한 달은 잘 안 나오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특히 병원과 조리원을 거치며 분유를 자주 먹이다 보면 아기가 빠는 힘을 못 기르고, 젖 양도 당연히 늘지 않는다.
나는 조리원에서 4시간 정도 간격으로 젖을 물리거나 유축을 했다. 젖을 물린 다음엔 분유로 보충을 했다. 처음엔 5ml, 10ml만 나오더니, 한 달이 지나갈 무렵 80ml가 나왔다. 두 달쯤 됐을 땐 100ml가 나왔다(양 가슴을 15분씩 유축한 기준). 유전적으로 나는 젖이 잘 안 나올 거란 생각을 하기보단 첫 달은 열심히 물려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우리 엄마도 젖이 잘 안 나와 일찍 단유 했다고 했다.
젖을 물릴 땐 가능하면 유두 보호기를 쓰지 않는 게 낫다. 적응하기까지 유두가 아프긴 해도 자꾸 직접 물려야 함몰됐던 유두가 먹기 좋게 모양이 잡힌다. 그래야 나도 안 아프고 아기도 잘 빤다.
분유 브랜드가 어찌나 많은지, 고르는 게 진짜 어렵다. 특히 배앓이가 생기면 엄마 아빠들은 아기에게 맞는 분유를 찾아 유목민이 된다. 한 달만에 7~10번 분유를 갈아탔다는 사례가 맘카페에 넘쳐난다.
우리 일단이는 조리원에서 일루마를 먹다가, 나올 때쯤 압타밀(이마트 수입)을 먹였다. 집에 와선 신생아에게 더 좋다고 해서 해외 직구로 독일산 압타밀을 사 먹였다. 집에 온 지 일주일쯤 됐을 무렵 배앓이가 시작돼 배앓이에 좋다는 다른 분유를 먹여야 하나 고민이 시작됐다.
조리원 원장님에게 문의하니, 분유 성분은 크게 다를 게 없다며 기존에 먹여본 분유 중 잘 먹던 게 있으면 그걸 다시 먹여보라고 했다. 너무 많이 줘서 그럴 수도 있으니 양도 좀 줄여보라고 했다. 신생아의 소화 기관은 미숙해서 많이 주거나, 분유를 자꾸 바꾸면 피곤해한단다.
이 조언을 따라 바꾸기 직전에 먹였던 압타밀(이마트 수입)을 다시 먹였더니 배앓이가 싹 사라졌다. 이후에도 아기가 먹다가 짜증을 내며 잘 안 먹으면 분유를 바꾸기보단 먹는 양을 조절하거나 젖꼭지 사이즈나 젖병을 점검하면 문제가 해결됐다.
참고로 일단이의 경우 4주 차에 젖꼭지 사이즈를 SS에서 S로 교체했고, 12주 차에 S에서 M으로 교체했더니 잘 안 먹고 보채던 게 사라졌다.
5~7번은 다음 글에서 읽으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