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집에 오니 좋다

by 연희동 김작가


"집은 어머니입니다"

누가 나에게 집에 대한 의미를 물어본다면 나는 일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집은 그립고 포근하고 아늑한 곳,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다라고,


3주간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곧 만나게 될 우리의 공간을 기대하며 음미하듯 천천히 열쇠를 꽂고 현관문을 열었다.


"칵"


음식냄새도 사람의 체취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집안의 공기가 내게 안겼다. 이랬었구나 이게 본연의 우리 집 체취였구나. 화병에 꽂은 꽃이 질 때쯤 은은하게 풍기는 마른 꽃냄새 같은 공기였다.

뒤이어 아들이 병원에서 가져온 짐들을 들고 들어 왔다. 나는 이 순수한 공기를 훼방하고 싶지 않아서 짐들을 모두 이층 세탁장에 올려두라고 일렀다


식집사의 귀가보고는 한참이 걸린다 그동안 물이 마른 건 없는지 웃자란 건 없는지 장맛비에 무른 건 없는지, 다행히 모두 다 건강하다. 모르긴 해도 지금 우리 식물들은 반가움에 몹시 꼬리를 흔들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나는 가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 인구가 줄어 도시에 빈집들이 늘어난다면 그곳의 주인은 누가 될까?라는 종류의 궁금증이다. 고양이나 비둘기가 차지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한동안 비워둔 우리 집 뜰을 바라보면서 고양이나 비둘기보다도 먼저 소유권을 장악하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바로 나무, 나무 중에서도 잭크의 콩나무처럼 넝쿨손을 가지고 있는 나무일 것이다. 맞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같은 사원도 무성한 정글숲에 가려져 오랫동안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거실문을 열고 데크로 나갔을 때 나는 데크의 나무 틈사이로 돋아난 으름나무줄기를 보고 놀랐다. 여기저기서 삐죽이 내민 넝쿨손이 갈 곳을 잃고 데크 위를 기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나의 귀가를 반기지 않는 것은 으름나무 넝쿨뿐이다. 외출복을

벗을 사이도 없이 장갑을 끼고 비집고 나온 으름줄기를 싹둑싹둑 잘라내었다. 하지만 살려고 어디든 기어올라 발버둥 치는 생명력이 안타까워 전지한 줄기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유리화병에 꽂아두었다. 아마 사 나흘은 족히 더 생명을 유지할 것이다.


대문옆 우편함이 배가 몹시 부르다. 지난 3주간 꾸역꾸역 넣어 둔 각종 고지서와 쓸모없는 소식지, 광고지들이 빗물에 홀딱 젖어있다. 그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 말릴 것과 버릴 것들을 분리해 놓았다.


더운 열기가 훅하고 얼굴을 덮친다.

한 낮이지만 뜰에 물을 흠뻑 뿌려주었다. 마른 흙들이 촉촉해지고 처진 잎들이 생기가 돋는다.

지독하게 찌는 날씨지만 그래도 집에 오니 좋다.


텃밭상자에 심어놓은 고추와 토마토는 붉게 익고 뽑아내지 않고 그대로 둔 개똥참외는 이웃집 담장을 타고 하염없이 기어가고 있다. 아침마다 뜯어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던 바질은 향기로운 잎은 몽땅 벌레에게 먹히고 초라하게 줄기만 남아 애처롭게 서있다. 배부른 벌레는 간 곳이 없다.

그동안 내가 이들의 주인이라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나는 그저 조금 거들어 주었을 뿐 이들을 키운 건 자연이었다.


우리 집 옥상 테라스에서. 바라보면 내가 입원해 있던 병원의 병동이 멀리서 보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곳 창가에 서서 집을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 내 집에서 병동을 바라보며 고통으로 잠 못 이루던 옆 침상의 그들도 하루빨리 나처럼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힘든 일을 마치고 지쳐 돌아온 자식을 반겨주는 어머니처럼 집은 퇴원하고 돌아 온 나를 온몸으로 안아 주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