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편의 외박

by 연희동 김작가

남편이 1박 2일의 외박허가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외박을 허락할 정도로 많이 회복은 되었지만 휠체어를 탄 남편이 집으로 오기 까지는 쉽지가 않았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층계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 집구조인 데다 남편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있는 서재는 2층에 있어서 집 안에서도 또다시 층계를 올라가야 한다.

우리 집은 젊고 건강한 가족들을 위해서만 지어진 집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남편은 아들의

등에 업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지난해 가을. 갑자기 쓰러져 119구급차를 타고 집을 떠난 뒤 무려 열 달 만에 귀가다. 오늘은 남편뿐 아니라 아빠를 맞이하는 온 가족들이 무척 행복한 얼굴이다.

멀리서 맛깔스러운 반찬을 택배로 보내준 동생과 오빠의 정성이 식탁에 가득하고 아이들은 아빠가 평소에 좋아한 음식들을 준비했다.

남편이 집에 온다니까 지인은 귀한 아로마 오일을 선물로 주셨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뒤 그분에게 급조로 배운 마사지를 정성스럽게 해 주었다. 앙상한 팔목에 신경이 빨리 살아나 주기를 기원하며 남편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면서 건강할 때 해주지 못한 걸 후회했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라도 서로 아끼며 고마워하고 살면 되니까.


나는 고작 3주 동안 입원을 하면서 그토록 집에 오고 싶어 했는데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가도록 병원 생활을 하는 남편은 얼마나 집이 그리웠을까, 평소에 말이 없는 사람이어서 표현은 덜하지만 남편의 눈은 집에 오니 좋다고 천 번 만 번 말하는 것 같다.


남편이 집에 오니 좋다. 아무리 더운 날에도 밤이면 집안의 문을 꼭꼭 잠그고 잠을 자야 했던 지난 날들, 오늘 하루는 문을 활짝 열고 우리의 웃음소리가 담장너머 들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큰소리로 웃고 떠들어도 된다.


남편이 집에 있다는 건 아내를 거리낌 없게 만드는 일이다. 아이들이 말한다. 엄마 좋으시죠? 아빠의 부재로 인해 갑자기 혼자가 된 엄마를 노심초사하던 아이들도 오늘만은 걱정에서 해방되는 날이다.


남편에게 닥친 갑작스러운 병은 우리 가족의 평온했던 삶을 온통 휩쓸고 지나간 쓰나미였다. 얼마나 지독한 고통이었는지 사사로운 걱정이나 고민 따위조차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기나긴 시간 동안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격려와 위로의 말들, 남편을 위한 기도의 발길들, 때때로 현관에 도착한 택배박스 안에 담긴 혈육의 정이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모든 이의 덕분이다

남편은 이겨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처절한 싸움 끝에 얻은 승리다.


남편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너무 벅찼기 때문일까?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조용히 듣고 있고 나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약속된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남편이 병원으로 돌아간 뒤 흩어진 옷가지들을 치우며 생각한다.

평온할 줄만 알았던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나를 지탱해 준 건 무엇이었을까? 물론 가족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나에게 믿음을 준 건 남편이었다. 고통을 견디는 남편의 의지가 나에게 힘이 되고 견뎌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지금껏 한 번도 이유 없이 외박을 한 적이 없다. 첫 번째 외박이 집이라니...

어쩌다가 나는 남편이 외박하기를 기다리는 아내가

되었다.


"잘 도착했어"


'도착'이라는 문자가 설다. 남편이 있어야 할 곳은 우리 집이다.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오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