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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생일날

by 연희동 김작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가을비라기에는 조금 억센 빗줄기이지만 밤새 내린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묘하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종일 울어대던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지겹기만 하더니 그들이 사라진 지금은 한낮의 조용함이 낯설고 문득 쓸쓸한 기분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제가 아마 가을을 타나 봅니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입니다. 비록 병원에서 맞이하는 생일이지만 장소가 어디든 생일날은 축하해 주고 축하받아야 마땅합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과 케이크를 준비해서 나서려는데 더 굵어진 빗줄기가 발목을 잡는군요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잠시 비 오는 날 뜰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작년 이맘때 남편이 병원에 입원을 하였으니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이 회복된 남편은 지금은 열심히 재활운동을 하며 다리에 힘을 기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는 모습이 감사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건강했던 지난날들이 더욱 생각나는군요


생일날이지만 아침부터 남편은 분주하였답니다 여름내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 둔 그릴을 청소하고 집 안팎 주변을 정리하느라 바쁘게 움직입니다. 아빠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저녁에 모이는 가족들을 위한 준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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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일상의 메인 메뉴로 삼겹살과 전어구이를 마련하였습니다. 남편의 생일이 들어있는 이때쯤에는 전어가 맛을 품는 철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생일의 주인공답지 않게 불 옆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전어의 살이 석쇠에 들어붙지 않게 노릿노릿 잘 구워내는 건 유일하게 남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딸은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아빠 입에 넣어주고 남편곁에서 보조를 하고 있는 사위는 남편의 빈 잔을 연신 채워주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가던 지난 시간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습니다.


'받아들이자'

나약해진 마음을 다스려봅니다.

거센 빗줄기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잎사귀하나 떨어뜨리지 않는 나무에게서 유연성을 배웠나 봅니다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지난 일 년간의 시간을 잊고 싶었지만 그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게 아닐까요?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자라는 순간만이 소중한 건 아니었습니다. 고난과 위기의 순간을 참고 견디며 이겨내고 있는 나이 든 지금의 모습도 소중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진종일 내릴 줄 알았던 비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먹구름 위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햇살이 비치고 있다는 걸 우리는 잊고 삽니다.


가져간 반찬과 함께 케이크에 촛불을 켰습니다. 함께 방을 사용하는 환자에게 들릴세라 나직하게 생일축하노래를 불렀는데 "생신을 축하합니다 " 라며 옆 환자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해 주네요.


병원의 입원실에서 생일을 맞이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가 없는 일이기에 '오늘은 특별한 생일날'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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