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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의 또 다른 의미

정리의 시작

by 연희동 김작가

벼룩시장의 어원은 벼룩이 생길 정도로 오래된 중고물품을 파는 곳에서 왔다고 다. 요즘 MZ들은 벼룩은 몰라도 벼룩시장은 잘 안다. 알다 뿐인가, 좋아하기까지 한다. 플리마켓이라고 하는 다른 명칭이 있지만 왠지 나 역시도 벼룩시장이라는 말이 더 끌린다.


오늘은 내가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예정이다.


우리 마을에서는 해마다 시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낭만 연희'라는 네이밍으로 주민 축제가 열린다. '동네'라는 말보다 '마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내가 사는 이곳은 서울 도심이지만 아직은 아담하고 정스러운 정취를 잃지 않고 있다.


축제의 꽃은 역시 음악과 춤이다.

어린이놀이터 옆 공터에는 그동안 자치회관의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갈고닦은 기량을 발표하는 주민들의 장이 마련되었다. 신나게 치는 장구합주와. 댄스. 어린이들의 태권도와 마술사의 묘기, 청소년들의 아이돌 댄스까지 모두가 어울려 축제를 즐긴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경품권을 나눠주어 푸짐한 상품을 안겨 주기도 한다.

축제를 하는 동안 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길가에는 작은 부스가 세워지고 부스마다 꽃과 도자기 수제과자와 잼. 빵등 다양한 상품들을 팔고 있다.


여행 중에 지역의 축제를 만나는 건 행운이다. 그럴 때면 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곳에 머물고 특별한 음식을 맛보며 특색이 있는 물건들을 살 수 있는 기회를 흠뻑 누렸다.

해외여행 중에는 일부러 벼룩시장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재미는 무척이나 쏠쏠하였다. 누군가 사용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물건이지만 개의치 않고 사는 것도 벼룩시장만의 매력이다.


주민센터에서 마련해 준 탁자 위에 준비해 온 물건들을 펼쳐놓았다. 오늘 내가 팔 물건들은 그동안 다녀온 여행지에서 사 모은 소품들이다. 이 또한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와는 다른 취향을 가진 자식들에게 억지로 떠밀어 안겨 주고 싶지는 않은 물건들,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들이다.


아침마다 바라보며 안녕? 하고 인사했던 찻잔이며 인형 조무래기들. 찬장에 넣어두고 오며 가며 눈맞춤하던 장식소품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면서 서운함 뒤에 오는 이 기분은 뭐지? 그건 마치 내가 키우던 강아지를 남에게 주면서 유기하지 않고 분양했으니 죄책감이 덜하다는 생각을 품는 것과 같은지도 모른다.


뜻밖에도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많았던지 물건들이 곧잘 팔려나갔다. 어제 한 일도 잊고 사는 내가 수년 전에 구입한 물건의 가격은 어찌도 그리 또렷이 기억을 하는 걸까, 아깝다고 생각하면 팔 수 없는 것들이지만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해 주는 게 오히려 잘한 일이라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접는다.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던 물건을 사가는 사람에게 물건뿐 아니라 소품에 담긴 이야기까지 함께 전하는 일이 즐거웠다. 나에겐 소용하지 않은 물건도 누군가에겐 필요하다. 물건을 고를 때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의 밝은 얼굴에서 예전의 내 모습을 보았다.


이제는 사들이기보다 정리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인생에서 헤어질 나이가 되었다는 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벼룩시장을 하면서 알았다. 벼룩시장은 내가 아끼던 것들을 다시 새롭게 사용할 그 누구에게 전하는 또 다른 대물림이라는 걸, 꼭 내 핏줄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그 물건을 갖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주면 마음이 한결 유쾌하다는 것도 알았다. 오히려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 생각하니 벼룩시장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새로움으로 재탄생한 나의 소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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