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예뻐라~ 흑진주와도 같은 알갱이들이 촘촘히 박힌 녀석들을 보는 순간 나는 귀여운 외모에 마음을 홀딱 뺏기고 말았습니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뜰이 아닌 건물의 옥상에 주렁주렁 열려있는 이 보석 같은 열매는 머루입니다. 굳이 말하면 산머루가 아닌 집머루인 셈이죠
J 언니는 탁구교실에서 만난 사회 선배입니다 간호사로 일을 했던 젊은 시절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동남아에 있는 여러 나라의 오지에서 의료선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여행으로 가기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그곳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전설 속의 신비로운 여인과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답니다.
J 언니의 집, 다시 말해 사방이 높은 건물들로 둘러싸인 5층 빌라의 옥상에는 이 건물의 주인이기도 한 J언니 부부가 공들여 가꾼 정원이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두 그루의 머루나무는 옥상의 난간을 마치 거대한 용처럼 기어가고 있는데 가지마다 귀한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으니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오늘 나는 난생처음 머루를 따는 체험을 해 봅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병원생활로 인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때, J 언니는 곁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환자를 보살피면서 얻은 경험을 이야기해 줄 때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되더군요
특히 곁에 있는 가족의 의지가 환자의 회복을 좌우한다는 말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를 일깨워주는 활력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머루는 간에 좋다고 합니다. 햇빛을 잘 받고 자란 남향의 머루는 따지 않고 남겨두었으니 그걸 따서 와인을 만들어 남편에게 주라고 합니다. 자잘한 보랏빛 알을 품고 있는 머루를 처음 따보는 나는 그 초롱초롱한 귀여움을 이길 재간이 없어 한동안 바라만 보고 있었답니다.
머루를 담은 쇼핑백이 제법 묵직합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단골 미용실 원장을 만났습니다. 머루를 보며 신기해하는 그에게 머루 한송이를 건네며 머루나무 예찬을 펼칩니다. 알이 굵고 싱싱하다며 활짝 웃는 그를 보며 내가 키운 것도 아닌데 왠지 흐뭇하였습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이웃집 젊은 부부를 만났습니다. 애완견이 먼저 꼬리를 치며 아는 체를 합니다. 부부에게 머루 한송이를 건네자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부부는 머루를 처음 본다고 합니다. 누구에겐가 처음을 선물한 오늘, 내 마음이 뿌듯 해 집니다.
머루를 알알이 따서 물에 씻어 놓았습니다. 손끝에 머루물이 들었습니다. 오늘 하루가 아름다운 보라빛깔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바라만 봐도 예쁜 옥상 위의 머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