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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걸어요

by 연희동 김작가

11일 11일, 오늘은 빼빼로 데이다. 지금부터 45년 전에는 빼빼로 데이라는 게 없었다. 그날은 우리 어머니가 정한 최고의 길일이었고 우리들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 45주년은 사파이어혼식이라고 한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그 길을 갈고 닦아보면 사파이어보다 반짝거리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의 45주년 기념일은 조촐했다. 지금껏 중에 가장 조촐하지만 가장 진솔한 그런 시간이었다.


오늘은 병원식사가 아닌 둘만의 오붓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점심시간에 외출을 허락받았다.

병원 근처이어야 하고 남편이 탄 휠체어가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장소를 고르려니 우리가 원하는 곳을 찾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런들 대수랴 날씨마저 이렇게 화창한 걸,


깔끔한 복어탕집이 눈에 띄었다. 복어요리는 남편이 건강할 때 가끔 먹었던 음식이다. 미나리가 수북하게 담긴 복어탕이 투박한 질그릇에 담겨 져 나왔다. 아직 손목의 신경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남편은 젓가락대신 포크를 사용한다. 나는 남편의 그릇에 담긴 복어를 건져내어 가시를 발라주며 생각했다.


감사한 일이다.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일도, 자신의 겨자 소스 그릇에 스스로 간장을 붓는 일도, 곁에 있는 냅킨을 집어 나에게 건네주는 사소한 것까지 모두 감사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밖으로 보이는 노란 은행나무잎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에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모든 건 우리가 지금 함께 있기 때문이다.


투병 중인 남편곁에서 함께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서로 좋을 때보다 더 안아주고 싶었다.

내 안에 뭔가 마디쯤 자라고 있는 듯했다. 이런 걸 성숙이라고 하는건지도 모른다.


결혼기념일은 둘이 함께 있을 때라야 의미 있는 날이다 결혼 50주년은 금혼식이고 60주년이면

다이아몬드식이라고 한다. 무사히 45주년이 되는 사파이어혼식까지 맞았으니 금혼식과 다이아몬드혼식까지 오래오래 함께 걸어 가자고 약속했다.


단풍이 곱게 물든 산책로를 남편이 탄 휠체어를 밀고 오면서 우리의 가을도 단풍처럼 아름답게 물들어 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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