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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우 Nov 30. 2018

국가부도의 날 : 그날 우리가 잃은 것은 돈이 아니었다

거시와 미시의 공존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허상'을 믿기 때문이다. 허상을 '신뢰'함으로써 인간은 범지구적으로 연대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전무후무한 능력을 얻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허상을 전달했고 문명을 통해 허상을 강화했다. 대부분의 것들이 전자화되는 20세기부터는 허상의 힘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신용카드를 긁어 거금을 결제하고 아이디를 보며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 정보화 시대라 일컫는 이 시대를 다른 말로 정의하자면 '허상의 시대' 혹은 '신뢰의 시대'라 할 수 있겠다. 


 영화는 고도자본주의로 치닫던 20세기 끝자락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허상의 붕괴'를 다룬다. 우리가 믿고 살아왔던 법칙과 원리가 처참히 무너지던 날 국가 부도의 날을 조명한다. 그날 우리가 진정 잃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국가부도의 날>은 거시적인 영화다.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여러 인물들의 행동을 추적한다는 구성은 작년에 개봉한 <1987>과 구성이 비슷하다. (1987년 이후 10년 뒤 1997에 IMF가 일어났다.) 하지만 각각의 플롯을 하나로 엮은 뒤 인물관계에 집중한 <1987>에 비해 <국가부도의 날>은 좀 더 거리를 유지한채 각자의 플롯들을 유지시킨다는 점에서 보다 거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아쉬웠다. 

당시 대한민국의 썩어빠진 경제 구조를 설명하는 윤정학 (유아인)



<거시적인 스토리텔링의 다채로움>

위기를 막으려는 인물: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위기에 베팅을 한 인물: 금융맨 ‘윤정학’(유아인)

위기에 희생되는 인물: ‘갑수’(허준호)


  세가지 줄기가 차례대로 오가며 사건은 구체화된다. (굳이 비중을 따져 보자면 김혜수 > 허준호 > 유아인 순이다. (감상피셜)) 영화는 동시간대에 교차되는 희극과 비극을 비추며 누군가의 피눈물이 누군가의 뱃속 지방덩어리가 되는 신자유주의의 제로섬게임을 명료하게 비판한다. 대비되는 캐릭터들은 꽤나 설득력 있게 설명된다. 게임 캐릭터를 고르듯 다른 스타일의 인물들의 액션에 몰입할 수 있었다.


<미시적인 스토리텔링의 아쉬움>

  분명 감독판은 이 보다 20분 가량 길었을 것 같다. 영화를 끌고 가는 인물들의 서브텍스트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왜 유아인은 눈에 살기를 품고 돈을 벌려 하는지,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의 오빠로 밝혀지는 중소기업 사장 갑수는 과거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관객은 그저 유추할 뿐이다. 이런 서브텍스트 묘사의 부재 때문에 인물들의 행동이 아닌 '감정'에는 쉽게 이입하지 못했다.


 2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현재 대한민국의 전경을 비추는 엔딩 시퀀스가 진정한 영화의 클라이막스였다. 

영화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무엇이 없어지고 무엇이 생겨났는지를 반추한다. 장영엽 영화 평론가의 말처럼 '헬조선의 기원을 탐구하는 드라마'이다. 


항상 정이 넘치던 중소기업 사장 '학수'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폐혜는 인간성의 말소다. 카메라는 한결 냉담해진 우리 사회를 훑는다. IMF를 악용했던 재정국 차관과 베팅에 성공한 윤정학 (유아인)은 금융업 CEO가 되어 있다. 윤정학은 말한다. '절대 안 속아.' 그는 믿지 않아서 성공했다. 직원들에게 인자한 주름으로 웃음을 지어보였던 사장 '말수'는 이제 아들에게 '누구도 믿지 말라' 조언하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학대한다. '그는 믿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날 우리가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으로 대기업들의 똥을 치웠고 2001년 8월 23일 대한민국에 대한 IMF의 관리 체계가 끝이 났다. 나라의 국고에는 다시 달러가 쌓였고 GDP 1.531조인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우리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국가 간의 신뢰를 잃었다. 끈끈한 연대의식을, 마음으로 통하던 '정'을 잃었다. 


희망찬 허상을 잃어버린 우리나라에는 이제 사뭇 다른 결을 지닌 허상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듯 하다. 


평점 : 7.0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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