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의 시간
사형수가 사형 집행을 받기 전 마지막 식사를 자신이 원하는 것들로 푸짐히 먹는 것처럼 입대 예정자도 사회에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것들을 마치 의무처럼 먹는다. 치킨. 소고기, 돼기고기, 피자. 남은 친구,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잘 있으라는 이별의 말을 한다. 물론 사형수처럼 이 세상을 떠나 영영 이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만은 다시는 못 볼 것 같다. 까마득한 1년 6개월의 시간은 정말 힘겨운 무게다.
그렇게 차를 타고 훈련소에 들어선다.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을 고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애써 옮겨 단단한 철문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사형선고일이 시작된다. 뭐 좋은 관점으로 보는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 건강하고 올바른 육군, 국가의 자랑스러운 청년이 되는 날이라고도 한다.
이제 나는 입대를 한 순간을 기억하며 전역을 할 날을 상상한다. '이 정도면 꽤 많이 했네.'하고 착각하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내 앞, 내 옆에 있는 이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사형선고를 받았고 나보다 훨씬 먼저 다시 태어나 민간이 된단다. 젠장. 영화 <소울>에 나오는 탄생전의 영혼이 된 것 같다. 하, 세상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는 다양한 시설과 열정을 찾고자하는 숭고한 목표라도 있지. 군대는 사회에 있던 것들을 소거하고 압축하여 생활반경을 고등학교보다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놓았다.
이런 생각들을 반복하며 하루하루 내게 떠밀려오는 시간을 통과해낸다. 어김없이 아침 기상시간이 찾아오고 졸린 눈을 비비고 꾸역꾸역 삼시 세끼를 밀어넣고 휴대폰을 하다보면 저녁점호를 하고 취짐에 들어간다.
군대에서 지낸 시간들이 대견해지려 할때쯤 다가올 시간들이 떠오르면 내가 지나온 시간이 별로 대단하지 않은 것이라고 여겨지게 된다. 며칠 주기로 이런 잡념들을 반복하며 찝찝한 성취감과 지겨운 당혹감을 맛본다.
시간이 희망이자 절망이다. 다행인 것은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는 것이고 불행인 것은 그 시간이 꽤나 남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