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짜장면 안에 들어 있다.
그는 스스로를 병신이라 칭한다. 자살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빚 2억원, 회사는 구조조정을 하고, 애인은 못된 게 무능한 것보다 나쁘지 않다고 말하며 떠나갔다. 한강에서 뛰어내렸던 성근은 한강에 있는 밤섬에 도착한다. 생태보존지역이라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그곳엔 성근 혼자뿐이다. 그는 다시 한번 자살을 시도하다가 그마저도 포기해 버린다. 사는 것도 어렵고 죽는 것도 어렵다. 희망이 없는 자는 둘 중 하나도 해낼 자신이 없다.
그는 지갑 안에 있는 카드도 버리고 주민등록증도 필요없는 삶을 택한다. 그는 그저 무인도의 김씨로 살아간다. 섬에 있는 버섯을 먹다 잘못돼서 죽는다면 그건 그것나름대로 행운일 거라 생각한다. 죽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미래를 꿈꿀 필요가 없으니 삶이 간편해진다. 김씨는 밤섬에 표류하자마자 해변에 썼던 ‘HELP’를 지우고 ‘HELLO’라고 고쳐 쓴다. 새로운 삶에 그는 자신을 초대한다.
그녀의 이름은 김정연.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3년째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살아가는데 이름이 필요치 않다.(엔딩크레딧조차 여자 김씨라 적혀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세상과 소통한다. 다른 사람이 되어서 말이다. 그녀의 미니 홈페이지는 다른 사람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칠 수 있다. 그녀는 방문을 사이에 두고 가족들과 얼굴을 보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이런 생활을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나름의 규칙을 정해놓고 견고하게 성을 쌓아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게 만든다.
혼자가 좋은 그녀의 취미 생활은 아무도 살지 않는 달 사진 찍기다. 낮에는 결코 창문을 열지 않는다. 거리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에 단 두 번 창문을 열고 거리를 촬영한다. 봄과 가을, 민방위 훈련 때문에 사람들이 거리를 비울 때 그녀는 외로움을 사진에 담는다. 자기에게 동질감을 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없는 공간이다. 그런 그녀에게 밤섬의 김씨가 말을 건넨다. ‘HELLO’라고.
이 영화는 무인도에 들어간 남자가 짜장면을 만들어서 먹고 나오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김씨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로 인구의 1/5 이상이 김씨성을 갖고 있다. 그는 자살을 시도한다. OECD 표준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3.5%로 한국이 1등이다. 그의 모습은 이질적인 게 아니라 흔한 게 맞다. 김씨는 열심히 살았지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그는 남겨진 빚만큼 마이너스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가 무인도에서 짜장면을 만들어 먹겠다고 모든 걸 걸었을 때 마냥 웃을 수 없었다. 그가 성공하길 바랐다.
우연히 스프만 남아있는 짜파게티 봉지를 발견한 그는 스프를 먹지 않고 잘 보이는 곳에 묶어 둔다. 그리곤 면을 만들기 위해 새가 싼 똥을 모아 자신이 만든 밭에 심고 애지중지하며 키운다. 그는 짜파게티 봉지 뒷면을 읽으며 맛을 상상하는데, ‘희망소비자가격’ 글자에서 ‘소비자가격’을 가리고 ‘희망’을 발견한다. 그의 존재를 관찰하는 여자 김씨가 그를 돕기 위해 밤섬으로 짜장면을 배달시켜 위기를 맞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끝내 짜장면을 돌려보내고 짜장면은 자신에게 희망이라고 전한다. 돈만 내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을 굳이 만들어 먹는 아니, 밀가루부터 만들어 먹겠다는 사람을 보면 한심하다거나 미련하다거나 생산적이지 못한 인간이라 생각할 수 있다. 도시에서는 그런 평가가 너무나 쉽게 내려진다. 여자 김씨가 정체를 들켜 온라인상에서 댓글로 매장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건 김씨가 도심 한 가운데서 조난당해 생존을 위해 분투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짜장면을 만들어 먹기 위해 모든 걸 건 보통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린 ‘소비자가격’은 마치 연봉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세상처럼 느껴진다. 그는 결국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다. 짜장면을 만들어 먹었다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준비가 끝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본인을 포함하더라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단 한 사람, 여자 김씨 말고는. 여자 김씨는 마음 속으로 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다.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 서강대교를 건넜던 나날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에게 보냈다가 거절돼 돌아온, 굳어버린 짜장면을 거대한 희망이라고 맛보았던 기억도 생각났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처럼 외로운 섬과 같았던 그를 발견하고 나만 삶이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외롭다고, 혼자라고 세상에서 희망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도 김씨를 통해 배운다. 희망은 기적과는 다르다. 희망은 보이는 곳에 있고, 그래서 노력하게 만든다. 김씨의 짜파게티 소스처럼 말이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편지(해변에 적은 글씨와 유리병에 담은 편지)를 포함하더라도 매우 적다. 두 사람에게 많은 대화는 사치일 수 있다. 세상에서 밀려나거나 혹은 단절된 두 사람은 그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해주는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기적은 찾아오지 않는다. 세금고지서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면 아무도 기적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은 누구에게나 보인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만나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된다. 많은 이들과 만나지 못한 이 영화가 아쉽다는 생각을 해본다.
감독/각본 : 이해준, 배우 : 정재영, 정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