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니의 지금라이프 Nov 07. 2024

삶은 나팔꽃처럼

인생의 태풍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

남편과 가끔 저녁에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며 야경을 본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 철학이나, 삶의 방향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엊그제도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나의 가벼운(?) 질문으로 대화가 시작됐다.


여보는 인생의 모토가 뭐야?




남편: 음, 나는 '나팔꽃처럼 살자'야.

나: 나팔꽃처럼 사는 게 뭔데?

남편: '생명의 속성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음..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나: 뭔가 '살아남자' 같은 건가?

남편: 아니, 이걸 설명하려면 내 군대 썰을 풀어야 하는데....

나: ㅋㅋ 알았어 해 봐.

남편: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나팔꽃 심었다는 얘기는 아마 내 지인들은 다 알거야. 거의 모든 사람한테 다 말하고 다녔거든. 나팔꽃 심었을 때가 입대한 지 1년 2개월쯤 때였어.



그렇게 남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군대 생활은 모래시계 속 모래알처럼 끝없이 반복되기만 했어. 나는 공군 헌병이었고, 기지를 지키는 일이 주된 업무였지. 누군가 지나가면 문을 열어주고 닫는 일이 하루의 전부였어. 가끔 배달이 오면 음식을 받아주고, 아침에 간부들이 올 때면 음주 측정을 했어.


내가 있던 곳은 자연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새벽이 되면 고요한 가운데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곤 했어. 그때 당시에 나는 데이비드 호킨스의 책을 읽으며 영적 깨달음을 찾고 있었고, 사서삼경을 공부하며 삶의 방향을 고민하던 중이었어. 새벽 초소에 있을 때면 잠시 평화를 느꼈지만, 막상 일과가 시작면 분노와 억울함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더라.


상병이 될 무렵, 초소에서 근무할 때만이라도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

그래서 꽃을 심기로 했지.


인터넷을 찾아보니 흔하고 키우기 쉬운 꽃이 나팔꽃이라고 하더라. 휴가 때 집 앞 꽃집에서 나팔꽃 씨앗을 사왔어.


총 다섯 군데에 씨앗을 심었어. 네 군데는 꽃이 자라기 괜찮은 곳을 골랐고, 나머지 한 군데는 그냥 재미 삼아 초소 바로 옆, 면회실과 이어지는 문 옆에 심었어. 거긴 면회실에서 컵라면을 먹고 남은 국물을 버리던 곳이었거든. ‘여기서 싹이 나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심었는데, 설마 진짜로 싹이 날 거라고는 기대 안했지.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어.


키우기 쉬운 꽃이라더니, 정말로 다섯 군데 중 무려 세 군데에서 싹이 났고, 그중에 면회실 옆 땅에서도 싹이 올라왔더라. 라면 찌꺼기가 큰 영양분이 됐나 싶어 웃음이 나왔지. 선임들과 후임들에게 싹을 보여주며 "컵라면 국물은 다른 데 버려달라"고 했지. 그곳에서 싹이 난 게 신기했는지 다들 군말 없이 부탁을 들어주더라고.


매일 그 싹을 돌보면서 물을 줬는데, 자라는 속도가 꽤 빨랐어. 알고보니 나팔꽃이 덩굴식물이더라고. 그래서 줄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나무젓가락 하나를 꽂아줬어.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줄기가 나무젓가락을 훌쩍 넘어서는 거야. 나무젓가락 하나를 더 위로 이어 붙였지. 초소에 근무를 갈 때마다 매일 쑥쑥 자라는 나팔꽃을 보는 게 즐거웠어.


처음엔 무릎 높이쯤 자랄 거라 생각했는데, 나무젓가락 세 개를 이어 붙이고도 높이를 넘어서는 걸 보고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서 찾아보니까, 나팔꽃은 3미터까지 자란대. 결국 나는 초소 옥상까지 올라가서 벽돌로 노끈을 고정시키고, 아래로 늘어뜨려 나무젓가락과 이어줬어.

나팔꽃 줄기는 그 노끈을 타고 신나게 올라가더라. 교대 근무를 서는 선임과 후임들도 은근 관심을 보이는 눈치여서 근무를 바꿀 때마다 오늘은 얼만큼 더 자랐는지 나팔꽃 소식을 전해줬어. 우리 '우희' 덕분에 초소의 삭막한 분위기가 조금씩 누그러지는 게 느껴졌어.


'우희'는 내가 나팔꽃에 지어준 이름이었는데, '비가 오면 기뻐한다' 라는 뜻이야.


나팔꽃을 심은 지 3개월쯤 된 8월이었어. 줄기를 타고 올라가던 푸른 잎들 사이에 드디어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했어. 줄기 곳곳에 꽃들이 활짝 피어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어. 그런데 꽃이 피기 직전에 휴가가 잡혔어. 휴가를 다녀오면 만개한 나팔꽃을 볼 생각에 설렜지.


그런데 그때 마침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강타했어. 아마 기억하는 사람 많을거야. 뉴스에서는 연일 주의 경보를 내리고, 우리 집에도 피해가 생길 정도로 위력이 엄청난 태풍이었지. 초소의 나팔꽃이 무사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복귀했어.


초소에 도착했을 때, 예상대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어. 옥상까지 자랐던 나팔꽃과 그 줄기가 노끈 채로 떨어져 흙바닥에 처박혀 있더라. 주렁주렁 달려 있던 잎들은 대부분 찢겨 있었고, 남아 있는 몇 개의 잎들도 구멍이 숭숭 뚫린 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하게 변해 있었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트 모양 잎이 한가득하고 꽃봉오리까지 맺혀 있었는데, 이렇게 볼품없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실망스러웠어. ‘열심히 가꿨는데, 이렇게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태풍이 원망스러웠지.


하지만 차마 그대로 두고 치워버릴 수는 없어서 나는 다시 노끈을 옥상 벽돌에 고정시키고 줄기를 묶어줬어. 몇몇 잎이 남아 있길래 완전히 죽은 건 아닌 것 같았거든. 그런데 그렇게 하고서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볼라벤급의 태풍이 한 번 더 불었고, 이번엔 나팔꽃이 정말 끝장 났다고 생각했어. 남은 잎들이 거의 다 떨어져 나가고 줄기는 다시 땅바닥에 처박혀버렸지.


맞후임이 놀리듯 "상병님, 우희 뒈졌습니다"하고 장난을 쳤어.


나는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웃어 넘기면서 속상함을 삼켰어.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팔꽃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았어. 나는 다시 한 번 줄기를 노끈에 묶고 벽돌을 옥상으로 올려놨어. 하지만 그 때 쯤에는 이미 반 포기한 상태여서, 며칠 동안은 나팔꽃을 쳐다보기도 싫더라고. 보름 동안 근처에도 가지 않았어.


그러다 보름이 지난 주말, 초소를 청소할 겸 나팔꽃을 보러 갔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면회실 옆 문으로 갔는데, 거기엔 구멍이 뚫린 잎들과 새로 피어난 하트 모양 잎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고, 그 사이에 연보라빛의 나팔꽃이 활짝 피어 있더라.

그 후로 나팔꽃은 하루하루 더 많은 꽃을 피워냈어. 태풍을 견딘 후, 더 강하게 생명을 피워내기 시작한 거야.


나팔꽃은 새벽 4시쯤 피기 시작해서 오전 11시쯤 만개하고, 오후가 되면 져버려. 하루도 안 가는 반나절살이 꽃이야. 하지만 매일 다른 줄기에서 꽃봉오리가 맺히고, 새로 피고 지기를 반복했지. 나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새벽 4시부터 8시까지 근무를 서는 말번을 자청했어.


새벽 4시가 되면 외등 불빛만 닿은 고요한 어둠 속에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리고 나팔꽃이 피기 시작해. 새벽 순찰을 도는 동료들, 같이 근무를 서는 후임들을 불러서 종종 그 순간을 함께했어. 나팔꽃이 피어나듯 의미와 용기를 얻어 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


그렇게 하루하루 나팔꽃이 피고 지는 것이 일상이 된 10월 중순이었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더니, 하룻밤 된서리에 나팔꽃들은 전부 시들어버렸어. 두 번의 태풍을 맞고도 생명을 져버리지 않았던 나팔꽃이 순식간에 빛을 잃고, 잎과 줄기까지 모든 게 갈색으로 변해버린 거야. 그렇게 나팔꽃은 생을 마감했어. 준비되지 않았던 나는 또다시 알 수 없는 좌절감과 슬픔을 느꼈어.


11월이 지나고 12월이 되면서는 전역 준비로 바빠져서 나팔꽃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어.


1월이 되어 마지막 말년 휴가에서 복귀했고, 부대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산책을 하러 나갔어. 며칠 전에 내린 눈이 곳곳에 수북이 쌓여 있었고, 군생활을 되돌아보며 걸음을 옮겼지. 초소에서 근무 중인 후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면회실 옆으로 가서 나팔꽃을 마지막으로 보러 갔어.


나팔꽃은 생을 마감한 모습 그대로 노끈에 매달려 있었어. 꽃들이 진 자리에는 검은색 열매 같은 것들이 남아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톡 따서 만졌더니 껍질이 만지자마자 바스라지더라.

그런데, 바스라지고 남은 그 자리에 작은 씨앗이 들어있었어. 지난 여름, 이곳에 처음 심었던 그 씨앗이 다시 내 손바닥 위에 놓여있던거야.


라면 국물을 버리던 그 땅에서 싹을 틔우고, 두 번의 태풍을 맞고,

반나절밖에 피지 못하는 그 생명체가 매일 새벽부터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결국 씨앗이 되어 또 다른 생을 이어가고 있었어.


손바닥 위에 담긴 씨앗을 보는데,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팔꽃이 지나왔을 무수한 시간, 그 생명력과 순환을 느꼈어. 나팔꽃은 그저 피고 지며 자기 생명의 리듬을 따를 뿐, 그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좌절이나 실망, 포기 같은 건 그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는 걸 깨달았지. 다음 여름이면 이 초소 어딘가에서 나팔꽃이 또다시 피어날거야.


고요한 끈기와 자연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

마치 삶의 고난을 특별히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한 다시 일어서는 생명의 힘을 나팔꽃에서 느꼈어.

그리고 나도 나팔꽃처럼 살아가기로 다짐했어.




남편: 그 때부터 내 인생 철학은 '나팔꽃처럼 살자'가 됐어. 씨앗 알을 챙겨서 전역했는데, 마음 깊숙이 새겨진 나팔꽃을 평생 기억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지.

나: 당신이 왜 '생명의 속성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했는지 이제 알겠어. 마치 한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네. 나만 듣기 아까울 정도로.

남편: 고마워.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 아무리 큰 폭풍에 휩쓸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씨앗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아래는 전역 후 집 뒷산에서 직접 나팔꽃을 키우며 찍은 사진이다.



1. 꽃봉오리 (2~5일 후 만개한다)


2. 만개한 나팔꽃


3. 하루만에 시들었다


4. 꽃이 진 후에는 꽃술이 씨방을 감싼다


5. 열매가 자랐다


6. 완전히 시든 모습


7. 시든 열매 안에 든 씨앗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