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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Jul 10. 2022

<저주받은 아이>

열다섯의 폴은 고향에서 도망치듯 떠나야 했다. 가족에게 남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형은 동생  안에 숨어들어간 악마를 쫓아내려 했고 동생들은 앞다퉈 샤워를 했다. 부모는 아들이 받은 저주에 눈물을 흘리며 어디서도 팔지 않는 약을 구했다. 폴은 가족이 아닌 악마의 손을 잡기로 했다. 여기저기 떠돌다 어느 원목가구 공장에 들어갔다.  자신의 저주가 새어나갈까 말을 아꼈다. 말없이 그리고  없이 성실하게 일한 폴은 자신이 원할 때까지 목수로 일할  있었다. 손이 많이 상했다. 생활이 불편해질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수입이 좋을뿐더러 동료들은 돌아갈 고향이 없는 폴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중년이  폴은  외곽 도시에 집을 얻었다. 작고 평화로운  마을 이웃들은 서로에게 많은 관심을 쏟았다.  앞집에 사는 노인은 동네에서 배려심이 많기로 칭찬이 자자했다. 노인은 혼자 사는 그에게 미혼 여성을 잔뜩 부른 파티 초대장을 건네주며  웃었다. 폴은 노인의 상냥한 미소로 만들어지는  사소하고 모호한 불행이 두려웠다. 폴은 낡은 침대의 프레임을 뜯어 울타리를 만들었다. 누구나 넘어올  있을 만큼 키가 작고, 노란 페인트까지 칠한 귀여운 울타리였다. 하지만 그것이 폴의 집을 둘러싼 후부터 이웃의 발길은  끊겼다. 주변에 파티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넘어오는 날도 폴의  초인종 소리는 절대 울리지 않았다.      

 
사랑하는 것이 죄가  저주받은 아이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열다섯의 에릭은 지난주  마을로 이사를 왔다. 친절한 동네 이웃들이 에릭의 집에 찾아와 행복을 빌어줬다. 에릭은 주변에 또래 하나 살지 않는 이곳이 너무나 어색했다. 마을의 목사는 에릭의 적응을 돕기 위해 이번  마을신문에  하나를 실어보라고 권유했다. 에릭은 이삿짐에서 찾은 낡은 녹음기를 들고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웃들 전부가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낯선 아이의 인터뷰에 응했다. 에릭은 마을 사람들의 궤적이 전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이웃들이 하나의 삶을 쪼개 나눠 가진  아닐까 생각했다. 지루해진 에릭은 발을 끌며 툴툴거렸다. 발에 너저분한 낙엽들이 치이기 시작하자 드디어 마지막 집에 도착했다. 유일하게 울타리가 있는 집이었다.


초인종을 울리고도 생일 축하노래 두 번을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난 후에야 문이 열렸다. 에릭을 맞이한 노인은 한참 빗질을 하지 않았는지 머리가 부스스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눈은 반쯤 닫혀있었고 입은 꾹 닫아 처져 보일 정도다. 매우 오랜 시간 같은 표정이었던 듯 그늘이 깊었다. 얼굴 곳곳에는 꿰맨 자국 같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에릭은 괜한 긴장감에 떠듬떠듬 왜 방문했는지 설명했다. 노인은 아무 손짓 없이 집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에릭은 조심스레 뒤따랐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니 역시나 어두운 거실이 나타났다. 느릿한 걸음에 어떻게 벌써 저기 있나 싶을 정도로 아니, 사실 문을 열어준 적도 없는 것처럼 노인은 소파에 가지런히 앉아있었다.


방의 모든 가구는 나무였다. 빛을 낼 수 있는 거라곤 탁자 위 먼지 쌓인 양초뿐이다. 에릭은 ‘불이 날까 봐 초를 하나도 켜지 않은 걸까?’ 생각하며 하늘 높이 활활 타오르는 집을 상상했다. 에릭은 소파 앞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거실을 둘러봤다. 에릭의 고갯짓에 따라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마찰음이 났다. 노인이 앉은 소파의 천은 이상하게 뭉쳐있었다. 노인의 주름처럼 오래도록 같은 모양새로 깔려있었던 것 같았다. 창문을 다 가린 커튼은 아까 에릭의 발에 바스러진 낙엽처럼 낡아 있었다. 커튼에 난 작은 구멍 사이로 햇빛이 길게 들어왔다.

에릭은 방 안으로 기어 들어온 빛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햇빛은 거실을 가로질러 노인의 발치에 닿았고 곧바로 어두운 그림자로 변했다. 에릭은 고개를 들어 노인의 형체를 훑었다. 커피를 쏟았는지 얼룩진 면바지.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 어울리지 않게 잘 다려진 셔츠. 무질서하게 콕콕 박힌 턱수염 자국. 색이 바랜 눈동자. 에릭은 노인의 눈을 바라봤다. 에릭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노인은 에릭 어깨 언저리의 허공을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에릭은 녹음기 버튼을 눌렀다.
 

탈칵.
 

노인은 처음으로 에릭의 눈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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