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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찬 Jul 27. 2021

“네가 무슨 노력을 했니?”

(석형) 그래도 나 노력한 건 맞지?
(송화) 아니. 네가 무슨 노력을 했니? 그건 노력한 게 아니라 회피한 거지. 차라리 왜 훔쳤는지 캐물어 보고 싸우는 게 노력이야. 너 아무것도 안 한 거야. 수면제는 왜 이렇게 많이 먹냐, 정신과 상담은 어떠냐, 이렇게 물어보고 얘기를 해 봐야지. 고민만 하고 생각만 하는 게, 그게 무슨 노력이고 해결책이니?
(석형) 넌 참, 어떻게 모르는 게 없니? 나도 알아. 사실 나도 내가 문제인 거 잘 알거든. 그래서 그 부분만 쏙 빼고 얘기했는데 어떻게 넌 그걸 귀신같이 잡아내냐? 넌 가끔 800살 같을 때가 있어.

슬기로운 의사생활 5화 中

이해를 포기한 채 선을 긋거나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 타인의 어떤 말과 행동은 언젠가 반드시 나의 일이 되어 돌아온다. 언제든 해당 사항 있을 수 있음. 이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속단과 오만의 늪에 빠지는 건 순식간이다.


이 장면을 처음 볼 땐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석형이 아니라 송화에 가깝다고. 나도 송화처럼 말하고 생각할 것이고 행동은 말과 일치할 거라고. 너무나 당연해서 큰 울림이 없었던 송화의 대사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기어이 마음을 아프게 찌르고 들어왔다.


참 요란하게도 짝사랑을 하던 시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유일하게 시종일관 다그쳤던 친구에게 정색하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게 내 최선이라니까?” 그럴 때 떠올리라고 만든 노래가 아닐 텐데, 그 순간 내가 정한 BGM은 9(9와 숫자들)의 <최선>이었다.

“내 딴엔 그게 최선이었는데요/(...)/자꾸만 뭐라 하지 말아요/이 길이 아니라고 느낄 때/내가 최선을 다해서 포기할 테니까”  (9, <최선>)

그때 이 드라마가 세상에 존재했다면, 나도 석형처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나도 알아. 사실 나도 내가 문제인 거 잘 알거든.” 나도 알고 있었다. 사실 나도 내가 문제인 거 잘 알았다. 이제 와서 부정할 수도 없게 과거의 내가 남긴 메모가 그때의 속마음을 들쑤시고 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익숙하고 편하다’고 적은 날이 있었고, 그때 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피해 도망치는 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말한 최선이라는 건 나만 힘들어지는 길을 기꺼이 택해 불평 없이 걷는 일이었지, 상황에 직면할 용기를 내는 일이 아니었다.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질 각오로 고백을 하든 나를 위해 독하게 마음을 접든 양단간에 결단을 내려야 했는데, 나는 여기에 써야 할 에너지를 내 모든 감정과 생각을 소진하는 데 쓰기로 했고, 그렇게 했다. 혼자 괴로워하고 애태우기만 했고 도돌이표 달린 생각만 반복했다. 지칠 때까지 울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끝까지 내 자신을 속였다.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래도 나 노력한 건 맞지?”하고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고 있었다.

송화는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그때의 내게 물었다. 네가 무슨 노력을 했니? 그건 노력한 게 아니라 회피한 거지. 왜 그랬는지 캐물어 보고 싸우는 게 노력이야. 고민만 하고 생각만 하는 게, 그게 무슨 노력이고 해결책이니? 문제점을 인지한 석형에게 송화가 건넨 해결책처럼, 내게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새겨준 원칙들이 있다. 송화의 조언을 들은 석형이 달라지려 노력하는 것처럼, 과거의 나와 다투며 만들어가는 새로운 시간이 또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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