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니 내게 남아있는 것. 마음이 담긴 레몬케이크와 ‘우리도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는 말. 이 말이 들리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석사논문을 쓰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땐 부족한 게 당연해’라는 말에 그 어떤 위로도 받지 못했던 건 남들은 어떠하든 나는 부족하고 싶지 않다는 오기 때문이었다. 자기객관화가 결여된 욕심은 동력이 아니라 독이었다. 아무리 완벽하게 해내려 발버둥을 쳐봤자 내 한계를 인지하고 인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쌓이는 건 무력감이지 실력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겨우 내 한계의 윤곽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한계를 응시하며 읽고 쓰고 말하고를 반복하다 보면, 성취감은 휘발성에 가깝고 손에 쥐는 결과물에 대가나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되풀이되기만 하는 과정에 지쳐버리는 날들도 함께 반복됐다. 그런 시기를 견디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그 중 하나를 오늘 새삼스럽게 마음에 품고 온 것이다.
함께 나누는 대화. 이미 이 시기를 통과했고 지금도 함께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 구를 만큼 구른 건가 싶어 입이 쓰지만 구를 만큼 굴렀다는 것은 또 얼마나 멋진 사실인가. 나 이제 힘차게 일어서서 걷고 뛸 수도 있는 거야?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못해 뒷구르기 옆구르기가 시작되는데. 그럼에도 희망은 발견하는 자의 몫. 9와 숫자들 <유예>를 흥얼거리던 시절을 보내주고 새로운 노래를 맞이하러 가자 [2020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