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공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공책은 누군가의 정성으로 묶여 태어난 것이었다. 공책을 파고든 실을 바라보면서 이 귀한 물건을 주는 이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정성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공책에 무엇을 쓸까 하다가 아껴만 둔 공책들의 집단에 포함시키기엔 쉽게 이 마음이 잊혀질 것 같았다. 책에서 배운 매일의 가르침을 공책에 적기로 했다. 필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책을 많이 읽게 되고 자연스럽게 쓸 말도 많아지게 되었다. 쓸 말이 많아질 수록 매번 공책을 마주해야 했고 그 때마다 어떤 사람의 땀과 노력, 누군가의 마음을 생생히 기억하게 됐다.
오늘은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의 일부를 필사했다. 뇌학과자 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저자가 임상심리상담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엮은 책은 나의 마음을 후벼파고 들쳐내고 다시 다듬어 내는 과정을 주었다. 그 중 다듬어내는 과정에는 책을 다시 읽어내며 공책에 옮겨 담는 과정도 속해있다.
오늘은 책의 일부를 적는 과정에서 '전전두엽과 편도체, 그리고 해마의 부피를 증가시키거나 해당 영역의 활동성을 높이는 요인들'에 대해 적었다.
규칙적인 운동, 꾸준한 공부, 항우울제 복용, 그리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제대로 된 심리치료.
이 부분을 적으며 꾸준함이란 정말 중요한 능력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말로 적혀 있지만, 4가지 요인들은 결국 꾸준해야만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꾸준하지 못하면 부피는 증가하다 말 것이고 활동성 또한 높아지다 어느 순간 다시 감소하고 말테니까.
그런데 꾸준함이란 어쩌면 다른 곳에서도 또한 중요한 작용을 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글을 옮겨 적는 동안 하게 되었다. 나의 필사 능력과 책을 먹는 힘은 어느 것도 아닌 꾸준함이 없었다면 늘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간단하고 단순한 깨달음을 적지 않는 다면 나의 글쓰기도 결국 힘을 잃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힘을 성장시키고 싶다면 나는 무엇이든 적어야 하고 그 말이 순 엉터리에 불과하더라도 쏟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딘가 정체되어 앞으로 나오지 못하던 글쓰기의 의문이 한 겹은 덜어졌다. 모든 겹이 덜어내기까지 나는 또 얼마 만큼의 글을 써야 할까. 그 순간을 생각하자니 쓰기를 멈추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