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아챘을 때 내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병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매일 아침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 얼마나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오랜 기간 먹고 있고, 그것이 1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다는 것쯤 아는 정도이다.
약은 어쩔 때는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우선 잡생각이 사라졌달까. 좀 더 명료하고 간단한 내가 되었다는 점에서 나는 매우 만족스럽다. 작은 걱정들이 사라지고 나니 큰 일에서도 중심을 잡아내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이제서야 알아 먹기 시작했을까.
그러면서도 언젠가 이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싶은 이유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잡생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나의 필력(=쓰는 힘)도 힘을 잃고 주저앉을 줄은 몰랐다. 나의 글은 모두 잡다하고 사소한 생각으로부터 기인했던 것이었을까. 이럴수가. 그렇게 나는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이런 망연자실함을 쓸 생각이 없었다니 참 단순했다.) 그 뒤로 '글을 쓰지 말아야지. 나는 글쓰기에 뜻이 없던 거야.' 하고 이 모든 상황을 퉁쳐버리고 말았다.
퉁치고 나니 편한 건 잠시뿐. 마음은 불편한데 그렇다고 브런치에 들어와 이러쿵 저러쿵 할 자신은 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되나 제대로 된 독자 한 명 있지 않는 나란 사람이 계속 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하는 가느다랗다 못해 희미한 심정이 되는 것이다.
편협한 시선에서 나의 글쓰기는 계속해 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글의 힘으로 지금 이 아쉬움을 해결할 방법은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어떤 말이든 해나가야 한다는 사실만을 깨달았다. 그것이 일기든 아니면 헛소리든 간에 나는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생각도, 쓰기에 대한 또는 삶에 대한 아쉬움도 남아나지 않을 때가 오겠지 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