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분석(SVA)의 절차 중, <내용 분석> 단계에는 진술의 내용이 진실의 준거와 부합하는지를 분석합니다. 이때 사용하는 도구가 '현실 모니터링(Reality Monitoring; RM)' 준거와 '준거기반내용분석(Criteria-based Content Analysis; CBCA)' 준거입니다.
현실 모니터링(reality monitoring)은 기억을 실제 경험(외부 출처)이나 상상(내부 출처)에 귀인 시키는 과정을 말합니다(Johnson, Foley Suengas, & Raye, 1988). 즉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하고 나면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였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그 출처를 파악하여 결론에 도달하는, '모니터링' 과정을 수행합니다.
예를 들어, 아주 생생한 꿈을 꾸고 난 이후 잠에서 깨어 꿈인지 생시인지를 판단할 때 꿈의 내용을 되짚어 보고 그것의 출처가 바깥 세계에서 온 것인지(실제로 내가 외부 환경에서 경험을 한 것인지) 아니면 내 속에서 나온 것인지(내가 만들어 낸 것인지)를 판단하여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source monitoring).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기억출처 뿐만아니라 타인의 기억출처 까지도 이러한 모니터링 과정을 통해 실제 경험과 허구를 구분한다고 합니다(예, Sporer & Küpper, 2004).
이러한 인간의 기억 및 인지 체계에 대한 일련의 연구를 토대로 한 것이 RM 이론과 준거입니다. RM은 실제 경험(지각 과정)을 토대로 한 기억은 내적 과정(상상)을 토대로 한 기억과 차이가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Johnson & Raye, 1981). 실제 경험이라면, 기억 내용의 출처가 외부 환경에서 직접 경험을 하고 상호작용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므로 지각 과정을 토대로 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기억 내용의 출처가 내부에서 기인하여 생각, 상상, 꿈 등이라면 허구의 기억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정에 따라, Sporer(1997)는 기존 연구 및 문항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8가지의 RM 준거를 만들었습니다.
준거1. 명료성
진술의 명확함, 생생함을 평가합니다.
준거2. 감각 정보
진술에 감각기관을 통하여 지각한 정보가 있는지 평가합니다.
준거3. 공간 정보
진술에 사건이 일어난 공간에 대한 정보, 상대적 위치 등이 있는지 평가합니다.
준거4. 시간 정보
사건이 발생한 시간, 순서 등에 대한 정보가 있는지 평가합니다.
준거5. 이야기의 재구성
진술 내용을 토대로 사건의 과정을 분명히 알 수 있는지 평가합니다.
준거6. 정서와 감정
사건 중 진술인이 느낀 감정이 있는지 평가합니다.
준거7. 현실성
진술의 내용이 현실적이고 이치와 사리에 맞는지를 평가합니다.
준거8. 인지적 조작
사건 당시 진술인이 하였던 추론, 생각 등을 통한 정보가 있는지를 평가합니다(유일한 '거짓 준거'이며 현재 거의 사용되지 않음)
RM 준거는 기억 이론을 토대로 연역적 방식으로 준거를 구성하여 그 이론적 근거가 타당함을 인정받고 있으므로 특정 범죄 유형이나 대상자에 국한시킬 필요가 없습니다(Vrij, 2009). 또한 연구 결과들도 이와 부합되어 나타났는데, 아동과 성인 모두를 대상으로 하여 대체로 일관된 결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전우병, 2011).
1955년 독일 대법원의 결정* 이후 30년 동안 심리학자 Udo Undeutsch는 약 1,500 건의 아동 성학대 사건에서 전문가로 위촉되어 활동하였습니다(Undeutsch, 1989). 그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CBCA 준거를 개발하기에 이릅니다.
* 유죄 선고가 미성년 목격자의 증언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거나, 목격자 증언이 다른 증거에 의해서 상당 부분 확증되지 않는다면 그 목격자 증언, 특히 성범죄 사건의 목격자 증언의 진실성에 관하여 심리학자와 정신과 전문의에게 증언하도록 해야만 한다(BGHSt, 1955).
CBCA는 '실제 사건의 기억을 토대로 한 진술은 허구/상상에 기초한 것과 내용과 질에서 차이가 있다'는 Undeutsch 가설을 토대로, 아동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귀납적으로 개발된 준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CBCA 준거는 실제 아동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인 것인데, 이를 Steller와 Köhnken(1989)이 체계화하였고, 아래와 같은 5개의 범주와 19개의 준거로 정리하였습니다.
준거1. 논리적 일관성
진술 내용의 세부 사항들이 똑같은 사건 과정을 진술하고 있는지, 전체적으로 서로 잘 어울리는지 등을 평가합니다(진술이 그럴 듯 한지를 평가하는 것은 아님. 진술 내용이 그럴 듯해 보이지는 않지만 논리적으로 일관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
준거2. 구조화되지 않은 표현
시간 순이 아닌, 기억이 떠오르는 그대로인 기억 순으로 진술하는지를 평가합니다.
준거3. 풍부한 세부 묘사
장소, 시간, 내용, 사람 등 사건 관련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한 진술을 하는지를 평가합니다.
준거4. 맥락상 깊이
사건 발생 장소, 시간, 사건 전후 상황, 피해자/가해자 간 관계 등 사건이 발생한 상황적인 특징에 대한 진술을 하는지를 평가합니다.
준거 5. 상호작용
사건 관련인들 간 구체적 행동 및 반응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는지 평가합니다.
준거6. 대화의 재현
사건 당시 사건 관련인과 나눴던 이야기를 특정 언어 행동 및 어휘를 그대로 인용해서 재현하고 있는지를 평가합니다.
준거7. 예상치 못한 난관 보고
사건 진행 중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 사건이 중단되거나 자발적으로 종료하였는지 등을 평가합니다.
준거 8. 독특한 세부 묘사
일어나기 쉽지 않거나 나타나기 드문 세부 사항에 대한 묘사가 있는지를 평가합니다(비현실적 내용은 아님).
준거 9. 부가적인 세부 묘사
사건을 설명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는지 평가합니다.
준거10. 이해하지 못하지만 정확한 묘사
진술인은 관련 지식이 없어서 자신이 경험한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분석가는 의미하는 바를 쉽게 알 수 있는 진술을 포함하는지 평가합니다.
준거11. 관련된 외적 연합
직접적인 행위와 관련된 진술은 아니지만, 사건 관련인들 사이에서 해당 행위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진술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평가합니다.
준거12. 주관적 심리 상태에 대한 묘사
사건 당시 경험하였던 인지 및 정서 상태를 진술하는지 평가합니다(단순 언급이 아닌, 사건 당시 동안의 변화).
준거 13. 가해자의 정신 상태에 대한 추론
사건 당시 가해자가 느끼거나 생각한 것, 가해자의 동기 등에 대하여 주관적으로 추론한 것이 나타나는지를 평가합니다.
준거 14. 자발적인 수정
자발적으로 자신의 진술을 수정하는 부분이 있는지를 평가합니다.
준거 15. 기억 부족 시인
자신이 경험한 사건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 것을 자연스럽게 시인하는지를 평가합니다(직접적인 질문에 대한 반응인 경우 제외).
준거 16. 자신의 진술에 대한 의심 제기
자신이 한 진술이 사실이 아니거나 부정확할 수도 있다는 등의 걱정, 의심하는지를 평가합니다.
준거 17. 자기 비난
사건의 원인을 본인 탓이라고 하거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등의 진술을 하는지를 평가합니다.
준거 18. 가해자 용서
가해자를 비난하지 않고, 이해와 용서를 해주는 표현이 있는지를 평가합니다.
준거 19. 범죄 특징에 대한 진술
범죄 유형과 부합되는 내용, 즉 유사한 패턴이 보이는지를 평가합니다(그러나 전형적인 방식인지를 평가하는 객관적인 방법이 없는 등의 이유로 거의 사용되지 않음).
일각에서는 CBCA 준거가 실제 사례를 통해 귀납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그 이론적 근거가 부족하고(Sporer, 1997), 성폭력 피해 아동의 진술분석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아동 성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만 적용해야 한다고 보기도 합니다(Raskin & Esplin, 1991). 그러나 Undeutsch 가설은 일반적인 기억 특징에 대한 가정이므로 대상자를 한정시킬 필요가 없습니다(Köhnken, Schimossek, Aschermann & Höf- er, 1995; Ruby & Brigham, 1997).
RM과 CBCA라는 진술분석 준거는 SVA라는 절차 내에서 사용되는 분석 도구입니다. 즉, SVA 절차의 내용 분석 단계에서 진술의 내용을 분석할 때 사용하는 도구인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진술분석 절차와 도구를 혼용하여 사용하거나, 도구만을 진술분석이라 칭하며 결과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진술분석 절차에 위배되는 것으로, 분석 도구를 분석 절차와 혼용에서 사용하거나 잘못 이해하여 적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SVA에서 내용 분석을 위한 평가도구로 RM을 추천합니다. 그 근거는 ① RM은 견고한 이론을 기초로 하는 반면, CBCA는 이론적 근거가 상당히 미약하고 ② RM은 더 적은 수의 준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훈련이 더 용이하고 일반 사건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습니다(Lovoie, 2004; Vrij, 2000).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술분석 연구 결과에 따르면 CBCA보다는 RM의 진위 변별력이 높게 나타났습니다(Strömwall, Bengtsson, Lender & Granhag, 2004; Vrij, 2008; 김미영, 2018; 김현정, 2009).
한편, 기소율과 유죄판결률에 대한 RM, CBCA, 성폭력 발생 맥락 평가, 타당성 평가의 영향을 비교한 국내 연구에서, RM이 아동 피해자 사건에서 기소율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이수정, 2000).
위와 같이 진술분석 도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준거의 적용은 표면적인 내용만으로 어설프게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준거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다양한 훈련 및 분석 경험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며, 진술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진술분석 결과를 살펴볼 수 있게 된다면, 해당 결과가 준거 적용을 타당하게 하고 있는지, 학문적으로 깊은 이해를 겸비하고 있는지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