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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Feb 17. 2024

첫눈에 반해버렸다

우연히 너를 만나버렸다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를 돌보기로 결정한 지 2개월.

나는 다시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얇디얇은 통장의 소유자로 당장 돈을 벌지 않는 것이 불안해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였고 방황을 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짧게 5개월 정도 일을 하게 되었다.

업무의 강도도 이전 회사보다 강하지 않고 무엇보다 점심 식대와 야근 식대, 출퇴근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명절을 지내보니 명절 선물과 조금의 특별 수당도 챙겨주셨다.

월급은 조금 줄었지만 돈을 아껴가며 살면 기존의 삶과 다르지 않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대로 안주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조금 했다.


그런데 야근을 하던 어느 날 조금 눈물이 났다.

나를 추천해 준 지인이 너무 열심히 일 하지 말라며 편하게 일을 해도 된다고 조언을 해주던 날이었다.

어떤 회사가 일을 살살하라고 할까? 참 좋은 회사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웬걸 나는 눈물이 차올랐다.

겨우 이게 열심히 하는 거라니, 겨우 이게?


이런 상황은 업무를 하는 중에 계속 마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주시니 너무 편해요~', '이것도 이렇게 해주시죠'

다들 내가 그들이 기대한 이상을 해주고 있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 눈물의 의미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일을 열심히, 열정적으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해야 하는 사람이다.

밤을 새우고 머리를 쥐어싸고 스스로의 멍청함을 탓하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나는 그것을 바란다.

만약 내가 전 회사에서 더 버틸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있고,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나는 그 회사를 계속 다녔겠구나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지쳤고, 앞으로 내가 가지고 싶은 직업이 이게 맞는지, 내가 잘하는 일이 이것이 맞는지 확신을 할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0년 뒤 마흔 즈음의 내가 혼자이기를 바라지 않고, 지금처럼 산다면 나는 필연히 그때도 혼자 외로이 일에만 집중하며 살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전혀 바라지 않는 나의 삶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아이를 낳는 삶을 꿈꾼다.

나는 누군가를 돌보고, 나의 삶을 돌보고, 시간의 흐름을 찬찬히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다면 나의 불안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는 것에 불안하고, 더 공부하지 못함에 불안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있음이 불안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미라클모닝을 하지 못하면 자책하고 스스로를 비난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상담의 역할이 컸다.

그렇게 살 지 않아도 큰일이 생기지 않아, 이 불안은 일시적인 것이야.

내가 불안함을 잘 느끼게 태어나서 그래, 대신 그만큼 여러 가지로 잘 준비해 두는 편이잖아.

괜찮아.

매일 되뇌는 말들이다.

물론 이제 상담은 받지 않기로 했지만 상담 선생님이 해주신 말들은 내 마음 깊이 새기고 있다.


그렇게 쉬어갈 타임을 정하고 나는 이제 뭘 하면 좋을지 막막해졌다.

매번 하고 싶었던 여행하는 삶을 살아볼까, 해외에서 살아볼까, 아니면 알바를 하며 계속 지내볼까, 항상 하고 싶었던 크리에이터를 해볼까, 친구와 하는 사업에 더 매달려볼까

고민이 아주 깊어졌다.


그러다 친구와 함께 간 클럽에서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한 남자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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