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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r 02. 2024

밥을 먹는 건지 설탕을 먹는 건지

우연히 너를 만나버렸다

"나 이미 도착했어"

도착해서 근처 카페에 있다는 그 남자.

나도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하게 움직였지만, 너도 그렇다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왜 이렇게 빨리 왔냐는 나의 말에 "혹시나 늦을까 봐, 서두르지마 나 여기서 평생도 기다릴 수 있어"라는 스윗한 말을 하는 남자. 그동안의 연애가 얼마나 스윗했을지 이미 짐작이 됐다. 아 이 남자 너무 선수라고요!!


외국인 선수(?)와의 데이트를 앞두고 잘못하면 모든 것이 그에게 말려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내 심장은 구름 위에 올라앉아있었다.

어쩌겠어 이미 그가 좋아져 버렸는걸, 걔는 이미 알고 있을 걸? 내가 자기를 엄청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하늘은 분홍색 구름은 하얀색 그리고 내 심장은 구름에 앉아 그네를 타고 있었다.

흔들흔들 땅에서 점점 더 멀리 위로 위로.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

오랜만에 마음 가득 채워지는 설렘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나서는 마음이 급해졌다.

시간이 없어 시간이.

나는 내가 시계 토끼라도 되는 양 계속 반복해서 보며 그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너를 나의 세계로 너무나 데려가고 싶어.

너의 하루가 나로 가득 차버리면 너무 좋겠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우리가 보기로 한 가게 근처에 도착해서 그를 찾았다.

그는 저 멀리서 웃으며 천천히 걸어왔는데, 그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너무 부끄러워졌다.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어색한 기분.

아니 왜 자꾸 처음 연애하는 새내기처럼 행동하냐고 스스로가 너무 답답했지만 별 방법은 없었다.

나는 이미 그가 너무 좋고, 덕분에 내 몸은 말을 듣지 않는 걸.

뚝딱뚝딱 대며 그를 맞이했다.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이 남자.

웃음이 또 너무 예쁘다.

내 옆으로 와 잘 지냈냐며, 오늘 일은 어땠냐고 묻는 그.

아 잘생긴 남정네야 조금만 떨어져서 이야기해 주겠니.

나 지금 심장에 조금 무리가 와..


나는 은근슬쩍 그에게 거리를 두며 그의 이야기에 답을 해줬다.

그러면서 우리가 갈 식당을 안내하며 음식 이야기로 말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어색해서 뚝딱이고 있는 나를 이 남자가 알았다고 생각한다.

뚝딱이는 나에게 계속 말을 걸며 분위기를 풀어준 그, 심지어 내 백팩이 무거워 보인다며 대신 메주기도 했다.

오늘은 친구들이랑 무엇을 했는지, 뭐가 재밌었는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를 보니 왠지 연인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외국인 남자와 이런 분홍분홍한 분위기를 풍기며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그런 날이 오다니.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사건이라면 오늘을 하나씩 음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여행이 아주 재미있었는지 핸드폰 메모장에 한국어들을 잔뜩 적어놓았었는데 (나한테는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자기가 직접 주문을 해보겠다며 준비한 멘트들을 나에게 읊어주며 확인을 받는 것이 꽤나 귀여웠다. 내가 더듬더듬 영어를 말하는 순간을 그도 이렇게 보고 있을까.

이렇게 귀여워 보이면 좋겠다.


음식이 나오고 나는 그에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강된장 쌈밥은 쌈밥과 강된장을 같이 먹어야 하고, 백김치 롤은 무엇인지 하나씩 알려주었다.

내 말을 하나씩 듣던 그는 어색하지만 익숙한 젓가락질로 쌈밥에 강된장을 올려 나에게 권했다.

얼떨결에 그가 먹여주는 밥을 먹었다.


하... 너무 달달해

강된장 쌈밥은 원래 짠 음식 아니냐고요

저 지금 설탕을 너무 과량으로 섭취했는데요


그와 이야기를 계속하며 밥을 먹는데, 이상하게 이 남자랑 있으면 영어가 술술 나왔다.

내가 이렇게 영어를 잘했나 싶을 정도

아 모르겠고 밥을 먹는 그가 너무 좋았다.


그가 밥을 잘 먹는지, 입맛에 맞는지 신경을 써서 그랬는지.

그가 밥을 잘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누가 밥을 잘 먹는 것이 이렇게 배가 부른 일인지 몰랐는데, 우리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나.


밥을 먹으며 우리는 또 다양한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이 남자는 아들을 가지고 싶다고 했고 그것도 여러 명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축구팀을 만드는 게 꿈이냐고 물으며 웃었고, 그는 축구팀도 나쁘지 않다고 웃었다. 그리고 나는 딸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딸이 더 친절하고 착하다며 왠지 아들인 그와 딸인 내가 둘 중 누가 더 나은지 이야기하는 조금 유치한 논쟁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유치한 논쟁까지도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밥을 먹는 그를 보며 자꾸 웃음을 지었고

그는 양볼 가득 음식을 넣은 나를 보며 계속 웃었다.

우리는 누가 봐도 행복한 연인이었다.


다 모르겠고 지금 그냥 내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너무 좋았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해서 우리가 떨어질 날들이 조금 무서운데 이대로 괜찮을까?

나는 또다시 행복함과 동시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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