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imate Strangers, 2018, 이재규 감독
40년지기 친구들이 성형외과 의사 석호의 집들이를 위해서 각자의 애인 혹은 아내까지 초청하면서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다. 반갑게 인사하며, 평범하게 서로 이야기할 무렵 석호의 아내 예진은 이 때 한 가지 게임을 제안한다. 각자의 핸드폰을 올려두고 끝날 때까지 오게 되는 카톡, 문자, 전화 등 모든 것을 공유하자는 것. 가볍게 시작한 게임은 곧 각자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면서 점차 일촉즉발의 상황 속으로 모두를 몰고가기 시작한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흥미롭게 관심을 가지는 지점들 중 하나는 누군가의 비밀이 밝혀지는 반전 파트다. 예상을 벗어나는 과거 행적이나 실제 성격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충격을 받는다. 그렇게 이전까지 봐왔던 모습을 재고하게 된다. 현재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가장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물건이다. 굉장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이제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흔쾌히 자신의 갤러리 전체를 보여줄 용의가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남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과 나만이 알고 있는 모습이 완벽하게 매칭이 안 되기에 부끄럽기 때문이다. 만약 남들이 생각하는 모습과 다른 비밀스런 사생활이 모조리 밝혀진다면, 일상 속에서 그만큼 큰 반전이 없을 것이다.
2016년 개봉했던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스'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완벽한 타인이라는 멋진 제목은 그저 원제를 그대로 번역했을 뿐이다) 배우자로서, 친구로서 알고 있던 모습을 무너뜨리는 스마트폰 게임이라는 소재는 굉장히 소박하면서도 신선하다. 더욱 차별화되는 점은 '쏘우' 시리즈처럼 누군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 재밌을 것 같아서 본인들이 자발적으로 게임에 참여한 것이라서 흥미롭다.
'완벽한 타인'은 원작이 가진 신선함의 정수를 가져오되 최대한 한국식으로 각색했다는 점에서 호평받을 만하다. 7명의 인물들에게 실제로 어디에서 본 듯한 특징을 부여함으로써 개성을 만들어낸다. 보수적인 남편과 잡혀사는 아내, 자식에게 관대한 아빠와 잔소리하는 아내 등 모두 낯이 익다. 우리가 한 쌍의 커플을 떠올릴 때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모습들이다. 초반부에는 이렇게 판을 깔았으니,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남은 일은 이것들을 모조리 깨부수는 일이다. 철저히 가식적인 면을 망가뜨려야 한다.
일단 재밌다. 한편으로는 코미디고, 한편으로는 스릴러며, 한편으로는 드라마다.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상당히 자연스럽다. 한국 영화 특유의 억지 개그나 감성팔이가 없는데도, 흘러가는 전개가 블랙 코미디 느낌으로써 너무 웃기다. 예측 불가능한 정보가 들통났을 때의 조마조마함과 당혹스러움을 그대로 관객들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긴장감 역시 유지된다. 또한, 이를 해명하고 그 동안 말하지 못 했던 진심을 전하는 전개를 통해 드라마적인 측면도 은근히 신경썼음을 알 수 있다.
배우들의 앙상블 또한 큰 볼거리다. 다들 연기를 너무 잘 하는데, 염정아와 유해진이 가장 좋았다. 특히 유해진은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내내 진지하고 웃음기 없는 역할을 맡았는데, 너무 만족했다. 진지하기 때문에 더 웃기는, 아이러니한 연기가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그걸 잘 해냈다. 이를 받쳐주는 동시에 흥미로운 관계로 나아가게 만드는 염정아의 연기 역시 상당했다. 개인적으로 예능 이미지와 다르게 욕설과 섹드립을 치는 인물을 맡은 이서진의 연기도 맘에 들었다. 혹자는 예능 이미지가 너무 떠올라 연기가 오히려 너무 어색했다는 비판을 하는데, 충분히 이 의견도 설득력 있다고 본다. 한 번쯤은 '독전'의 故 김주혁처럼 화끈하게 독한 악역을 맡아보면 다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물들의 비중 분배은 나름 적절했지만, 조진웅의 캐릭터를 100% 활용하지 못 한 점이 아쉽다. 그를 향한 떡밥이 마치 결말부까지 영향을 미칠 것처럼 해놓고는, 정작 그 떡밥을 너무 건성으로 넘어가는 연출 때문에 초중반부 장면들이 불필요하게 되어버린 실수가 생겼다. 마지막 위기로 이어질 수 있었던 귀걸이 역시 제대로 활용하지 못 했다는 점에서 마무리가 너무 급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초반부에 예진이 게임을 제안하는 동기도 딱히 설득력이 충분하다고 느껴지기 않기 때문에 뜬금없고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몇몇 사람들은 이서진의 캐릭터가 여성혐오적이고 은근히 동성애를 싫어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작품이 혐오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는 근거 없는 비난을 하고 있는데, 절대 아니다.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일상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흔한 혐오의 모습을 보여준 후 오히려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게이라서 싫어하는 건지, 게이인 걸 안 밝혀서 싫어하는 건지 물어보자 차마 대답할 수 없는 인물의 모습을 보면서 은근히 인권이 무시되는 사람들을 향한 혐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다만, 일부 장면들의 경우 메시지를 주기 위한 제작진의 의도가 필요 이상으로 노골적이여서 대사가 심히 어색하다. 특히 석호와 예진이 중반부에 화해할 때를 보면, 대사가 심히 문어체스럽고 대사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 하다. 후반부와 마찬가지로 살짝 낯간지럽기도 하고.
완성도는 좋은 편이고, 꽤 재밌었다. '서치'처럼 입소문으로 흥행할 듯한데,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은근히 웃음 타율이 뛰어나서 돈 내고 봐도 괜찮은 작품이다. 일정 부분 비속어나 야한 대사가 많기 때문에 그런 부류의 유머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추천. 친구들끼리 보러 가면 상당히 꿀잼일 듯 하나, 연인끼리 보러 가면 서로 핸드폰 한번 공유해보자고 할 것이니 재량에 맡긴다. 결말부에서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잃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최근 퀄리티가 낮은 한국 영화들이 넘쳐나는 와중에 오랜만에 수작 정도의 작품이 나와서 굉장히 반갑다. 7/10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형 블랙 코미디의 초석
※ 이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을 강력 추천한다. 자식들 싸움 때문에 한 집에 모인 부모들이 교양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말싸움을 시작으로 서로의 가식이 모두 들통나며 밑바닥 수준으로 추한 모습을 보이는 교양인들을 다루고 있다.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퍼 발츠, 존 C. 라일리, 조디 포스터 4명의 명배우들의 명연기를 밀도 높게 만날 수 있는 기회로서, 8점을 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