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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버무비 Jun 14. 2018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The Shape of Water, 2017,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과 우주전쟁이 한창인 1963년, 엘라이자는 친구 젤다와 함께 미국 연구소에서 청소부를 맡고 있다. 어느 날, 새로운 상사 리처드와 정체불명의 어인이 연구소에 들어온다. 엘라이자는 리처드에게 폭력적인 대우를 받던 어인에게 간단한 소통을 시작으로 그와 우정을 쌓는다. 곧이어, 우정은 사랑으로 바뀌게 되고, 그녀는 곧 목숨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한 어인을 탈출시키기 위해 젤다와 룸메이트 리차드와 함께 위험한 계획을 세운다.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만들었던 기예르모 델 토로의 신작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3개 부문에 후보로서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훌륭한 완성도를 입증함으로써 델 토로만의 작품 세계와 연출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두 번째 계기가 됐다. 판타지와 로맨스가 섞였지만, 델 토로답게 성인들만의 어두운 동화처럼 보인다.


줄거리만 보면,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 어인과 농아 여인은 상상해내기 쉽지 않은, 처음 보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각본과 디테일한 연출력으로 설득력 있게 구현해낸다. 첫 장면에 물에 잠긴 엘라이자의 집과 일상을 시작하는 그녀를 보여준다. 이후에 등장할 물속에서 살아가는 어인을 생각해보면, 여인과 어인은 다를 것이 없다는 주제를 시각적인 연출로 암시한다. 판타지적 비주얼로 관객에게 기묘한 감정을 심어주면서, 일종의 복선과 튜토리얼로써 작용한다.



어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해 엘라이자와 어인이 서로 소통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엘라이자는 말을 못 하고 어인은 언어를 모른다. 이 설정을 전제로 삼는 것부터, 영화는 언어의 교류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그럼 무엇이 중요한 걸까? 달걀과 간단한 수화로 소통을 시작한 그들은 서로에게 가까워져 사랑을 느끼고 엘라이자의 반복된 일상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온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서로를 존중하려는 진심이 느껴지고 그들 간에 감정의 교류가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요했던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실된 감정의 상호 작용이었던 것이다.



1963년은 지금과 다르게 누군가를 차별하는 정도가 차원이 다르다. 작중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들은 억울하게 차별의 요인이 되는 요소를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장애인, 여자, 흑인, 동성애자, 러시아인으로 꼽을 수가 있겠다. 여기에 제3의 요소로 아예 종족이 다른 어인이 들어간 것뿐이다. 실제로 엘라이자나 젤다가 리처드에게 경멸적인 발언을 듣는 장면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차별받는 사람들은 유대감을 쌓고 서로를 위로하며 존중한다. 작중에서 어인을 마법을 쓸 수 있는 인간으로 바꿔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이야기의 아귀가 잘 들어맞았다. 그래서 신이 있다면 자신처럼 백인일 것이라고 자신했던 리처드가 후반부에 어인에게 말한 마지막 한 마디가 상당히 중요하다.


정리하면, 이 영화에는 판타지로서 비현실적인 설정과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만연한 차별과 그것을 타파하려는 피해자들의 이야기 및 언어를 넘는 진실된 감정의 교류를 다룬 로맨스로서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설정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결말까지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연출을 택했다. 다른 영화였으면 뜬금없는 뮤지컬 장면도 사랑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압도적인 비주얼과 더불어 샐리 호킨스의 연기 또한 환상적이다. 대사 없고 표정 연기와 행동으로만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하기가 굉장히 힘든데 이걸 해냈다. 마이클 섀넌 역시 오랜만에 상당한 포스의 악역 연기를 제대로 뽐내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리처드 젠킨스도 멋진 목소리로 영화에 안정감을 부여하는 등 큰 기여를 하는 데에 성공했다.


여러모러 '판의 미로'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믿기 힘든 판타지적 인물들이 나와 여주인공과 교류하려 하는 플롯, 여운이 길게 남는 엔딩이 해당된다. 물론, 두 작품 모두 훌륭한 영화지만, 개인적으로 '판의 미로'를 더 재밌게 봤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감동적이긴 하나 중반부가 평이하게 흘러가는 면이 있었다. 또, 흥미진진한 로맨스만 생각하고 보러 오면 지루함에 몸서리를 칠 것이다.


마치 품격 있는 예술 영화에 가까운 장르 영화다. 항상 호러나 액션 영화만 보러 가가, 품위가 있는 고급스러운 영화를 본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참고로, 이 작품은 확실한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가 맞다. 손가락들이 절단되고, 자위 혹은 섹스가 노골적으로 암시되기 때문에 이런 장면들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살짝 묘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하다기보다는 예술적이고 꼭 필요한 장면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만났다. 8/10


힘이 없는 자들이 합심하면 때로는 위대한 일을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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