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ditary, 2018, 아리 애스터 감독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애니는 남편 몰래 서포트 그룹까지 가서 자신의 설움을 털어놓을 정도로 상실감에 빠져 있다. 가족들과의 분위기도 점차 냉랭해질 무렵, 그녀는 서포트 그룹에서 자신과 동일하게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었던 조안을 만난다. 서로의 감정에 공감한 이후 조안은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 한 영매에게 배웠다는 초자연적인 의식을 선보인다. 결국 조안에게 의식 방법을 전수받은 애니는 곧이어 가족들과 함께 망자와의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한다.
호러 영화는 관객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심는 영화다. 더 나아가, 좋은 호러 영화는 긴장감과 함께 공포감으로 관객들을 압도해서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게 하거나 심적으로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13일의 금요일'처럼 살인마에 의해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쫓고 쫓기는 긴장감을 자아내는 슬래셔 무비가 나오기도 했고, '호스텔'이나 '마터스 : 천국을 보는 눈'처럼 신체 훼손 장면을 본격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상황 혹은 사건에 대한 불편함과 충격성 그 자체를 선사하는 고어 영화까지 다양하게 개봉했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호러 장르들 중에서도 귀신이나 악마 등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하는 오컬트 공포 영화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다. 가장 유명한 호러 영화로 손꼽히는 '엑소시스트'도 오컬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과학으로 증명하지 못 하는 현상들과 존재를 등장시키다보니 악마와 빙의 같은 종교적인 내용을 섞는 편이다. 한 종교의 교리, 성경의 일부분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악마학의 존재들을 차용하기도 한다.
이번에 다루는 '유전' 역시 오컬트물이다. 이 작품의 절반 이상은 가정집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고 있으며, 파이몬이라는 중세 악마학에 나오는 악마가 등장한다. 대대로 내려오는 '후천적' 저주라는 소재에서 벗어나는 장면들이 거의 없고 심도 깊은 내면 묘사와 섬세하고 뚝심 있는 연출에 배우들의 열연까지 더해져서 호평을 충분히 받을 만하다. 고전적인 서사와 연출 방식을 현대적인 배경에서 디테일 있고 흥미롭게 풀어갔기 때문에 마치 클래식한 옛날 호러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보는 것 같은 인상까지 받을 정도로 괜찮았다.
사실 상당히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작품이다. 혹평을 내리는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유전'의 진행은 너무 진행이 느려서 지루함을 참기 힘든 나머지 별로 무섭지 않았다는 평가가 다분했다. 더욱이 후반부에 희망을 걸었건만 어처구니없는 결말 때문에 연출이나 개연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혹평도 있었다. 하지만, 이 혹평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쓰려고 하는 게 절대 아니다. 사실, 작품을 다 보고 나서 첫 번째로 든 생각이 '호불호가 많이 갈릴 만한 호러 영화는 맞구나'였다. 왜 목은 내내 잘려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악령이 가족 구성원들에게 빙의되는 설정은 전혀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마지막 5분은 상당히 찝찝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무섭기만 하면 될 영화가 알고 보니 상당히 답답하고 느릿느릿하며 불친절하기까지 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로 이 작품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섬뜩하게 무서웠다. '유전'의 배급사 A24가 3년 전 배급했던 '더 위치'와 매우 흡사한 방식의 전개 양상을 보여주는데, 초반에는 인물들 간의 관계나 살짝 불안한 감이 있는 사건들로 천천히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갑자기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는 일절 허용하지 않은 채 뚝심 있게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점점 강도 센 연출들을 선보이더니 후반부에 이르러 긴장감이 절정에 달할 때 제대로 폭주하면서 관객들을 극한으로 압박하는 데에 성공한다.
예고편을 하나도 안 보고 간 것부터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감독이 처음부터 뿌려주는 약간의 힌트들을 조합해가면서 다음 장면을 예측하게 만드는데 정작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장면들은 훨씬 충격적이고 예상을 뛰어넘기 때문에 더 무섭고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영화 내내 들리는 사운드트랙도 모두 상당히 효과적으로 불편하고 소름 끼쳤다. 가장 논란이 있는 결말과 관련해서도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기분 좋게 끝났어도 나름 만족했겠지만, 섬뜩함과 찝찝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기에 이렇게 끝나는 것 말고 또 어떤 엔딩이 가능할지 가늠이 안 된다.
호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들 중에 하나는 오프닝이다. 일반적으로 영화 내내 가장 중요한 인물이나 사물 혹은 장소를 등장시키거나 앞으로의 비극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유전'의 오프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 역할을 모두 수행했다. 처음 보이는 이미지는 나무 위에 세워진 작은 집이고, 카메라가 돌아가더니 애니의 미니어처 집이 나오는데 그 집 안에서 아빠 스티브가 아들 피터를 깨운다. 표면상으로는 실제 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작게 압축시켜놓은 '요약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미니어처가 실물과 동일하게 소형으로 만든 '소품'임을 뜻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작중 인물들이 애니의 미니어처처럼 어떠한 목적을 위한 소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관객들은 결말부의 마지막 5분에 가서야 이 목적이 대체 무엇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데, 파이몬 왕의 부활식이 나무 위에 세워진 작은 집에서 열린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의미심장한 오프닝이 아닐 수 없다.
상당수의 호러 영화들은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이 어떻게 목숨을 잃게 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유전'은 극중 인물들이 가족의 죽음으로부터 오는 상실감을 어떻게 극복하려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즉, 죽음의 과정 그 자체보다는 죽음 이후의 닥쳐오는 상황과 극복 과정이 이 영화의 핵심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미 타인의 죽음을 겪게 된 상황을 전제로 영화가 시작하기 때문에 주인공들의 내면에 따라서 극의 분위기 역시 훨씬 불안정하고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비극을 겪은 사람들이 앞으로의 희망을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던 중 피할 수 없는 저주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불행을 넘어 절망적인 스토리로 한 단계 깊어진다. 이 같은 설정은 호러 영화로서 굉장히 큰 메리트로 작용하는데, 앞서 호러 영화는 심적으로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던 점을 감안하면 배경 설정을 대단히 훌륭하게 해냈다고 할 수 있다.
가족 관계를 중심으로 정리해보면, 엘렌에게는 아들과 딸 애니가 있었고, 애니는 남편 스티브와 함께 장남 피터와 막내딸 찰리를 자식으로 두고 있다. 엘렌은 파이몬 왕을 숭배하고 그의 부활을 꿈꾸는 컬트 집단의 일원이었고, 파이몬 왕의 부활을 위해 자신의 가족을 제물로 삼는다. 사진첩에서 엘렌이 드레스를 입고 컬트 일원들에게 축복을 받는 사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선택받았고 그걸 자신의 영광스러운 업적이자 축복으로 삼은 듯 보인다. 먼저 자신의 아들에게 파이몬 왕을 옮기려고 했지만, 서포트 그룹에서 언급했던 애니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다른 사람을 집어넣으려고 하는 걸 눈치챘고 자살했다. 그래서 엘렌은 딸 애니와 그의 가족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다.
애니를 선머슴처럼 키우기도 했고, 그녀는 사실 피터를 낳고 싶지 않았으나 엘렌의 강요로 억지로 낳아야만 했다. 요양원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이후, 엘렌은 막내딸 찰리에게 파이몬 왕을 옮겼다. 혀를 튕기는 소리를 내고, 새의 머리를 자르려고 한 행동 모두 자폐증이 아닌 파이몬이기에 한 행동인 것이다. 애니 대신 엘렌이 이름도 지어주고 어릴 때 밥도 먹이고, 사진도 같이 찍는 등 유달리 찰리를 아끼고 보살펴왔다는 행보가 언급된다. 실제로, 악마학에서 파이몬 왕은 여성의 몸을 하고 있는 남성이며, 후반부 애니가 읽게 되는 서적에는 파이몬이 여성의 몸에 들어갔을 때 굉장히 격노해있고 최종적으로는 남성의 몸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말이 있기에 추론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엘렌과 컬트 집단은 이후 장남 피터를 통해 파이몬 왕의 진정한 부활을 꿈꿨다.
아리 애스터 감독이 모든 것을 관객의 해석에 맡겼지만, 인터뷰에서 유일하게 단 하나의 정답은 알려줬다. 찰리의 죽음은 우연이 아니라, 컬트 집단의 의도 하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파이몬 왕의 문양이 그려진 전봇대에 머리가 잘리게 된 죽음은 필연적이었다는 말이다. 우연히 만난 듯한 조안도 사실 그들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서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애니한테 처음부터 접근했다. 조안으로부터 애니가 배운, 영매의 기질을 이용한 의식 행위가 집 안에서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있을 때 이뤄지는 순간 파이몬 왕이 본격적으로 현실 세계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창문인 셈이다.
정신과 의사를 직업으로 삼고 있고, 사건을 가장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해결하려는 남편 스티브는 과학과 객관성을 상징한다. 종교나 악마 같은 이야기는 헛소리로 치부하지만, 결정적으로 주인공들 중에서 유일하게 초자연적인 현상을 아예 눈치채지 못 한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느끼는 사람은 애니와 찰리 그리고 피터다. 영매 기질을 통한 의식 행위가 파이톤 왕의 빙의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역할을 하기에 정황상 할머니 엘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엘렌과 애니 그리고 그녀의 자식들은 모두 한 핏줄이며 영매의 기질이 유전적으로 내려온 셈이다. '유전'이라는 제목은 마치 저주처럼 파이톤 왕의 부활을 위한 희생이 자식 세대를 거쳐 손자 세대까지 내려온 것을 비유하면서, 외부자 스티브를 제외하고 한 핏줄로서 유전적으로 내려오면서 부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영매 기질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내내 목을 포함한 머리도 전개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와 쥐의 목을 자르고, 피터는 책상에 머리를 박고, 찰리는 전봇대에 목이 잘리고, 애니는 천장에다가 머리를 미친 듯이 박다가 스스로 철사로 자신의 목을 잘라낸다. 머리를 잃거나 상처를 입히는 행동이 대다수지만, 단 한 장면만은 정반대로 나온다. 바로 파이몬이 빙의된 피터에게 컬트 일원들의 추앙의 외침과 함께 왕관을 쓰는 결말이다. 이때 전 일원들이 두 머리를 조아리며 만세를 외친다. 전자의 경우는 목숨을 잃었고, 후자의 경우는 부활했다.
머리는 사고하는 능력이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데, 둘 다 어떤 상황을 주도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해낸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목을 친다'라는 말이 완전히 끝내거나 제거한다는 뜻을 가진 것처럼 머리는 영화에서 판을 뒤흔드는 일종의 '주도권'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찰리가 새와 쥐의 목을 자르는 행위에는 거의 목숨은 잃을 듯한 생물을 임의적으로 죽여버림으로써 자신이 마음대로 죽음을 관장하는 통제권을 가졌다는, 일종의 우월감이 담긴 자만심이 드러난다. 찰리와 애니 모두 빙의됨으로써 자신의 몸에 관한 통제권을 잃어버리게 되고, 희생자로서 파이몬과 그를 추종하는 컬트 집단에 의해 머리가 잘리는 최후를 맞이한다.
피터의 경우 찰리를 죽였다는 죄책감과 애니를 향한 두려움 및 불안감 때문에 정신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는데, 그럴수록 파이톤이 접근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마리화나를 필 때 웬일인지 목이 붓더니 책상에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박기까지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간다. 마지막에는 그가 빙의돼 "찰리야, 너는 파이몬 왕이란다"라는 조안의 대사와 함께 머리에 왕관을 쓰면서, 피터 본인의 영혼이 아닌 파이몬 왕이 그의 육체를 완전히 장악했다는 것을 공식화한다.
부활의 끔찍한 제물로서 끔찍한 최후를 맞는 가족의 이야기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내용이 아니다. 오프닝에서부터 계속 복선들을 던져주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누워있는 엘렌의 시신에서 파이몬의 문양이 그려진 목걸이를 확인할 수 있고, 초반부 애니가 발견하는 엘렌의 편지에는 '우리의 희생은 보상받을 거야'라고 써져있다. 그들의 상황을 '요약본'처럼 알려주던 미니어처 집을 애니가 스스로 부시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애니가 스스로 일궈낸 것들은 결국 그녀 때문에 모두 파탄이 날 것이라는 것도 눈치챌 수 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파이몬 왕과의 직접적인 매개체가 됐던 애니도, 아무 잘못 없는 스티브도 희생당한다. 그저 애니는 슬픔에 못 이겨 찰리와 대화를 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정말 끔찍하고 비극적이며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진상을 밝혀내고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봤지만, 더욱 심연에 빠진다. 하지만, 흔하고 기본적인 서사 구조가 호러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스토리로서는 굉장히 효과적이고 탁월하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만큼 꼭 차기작이 빠른 시일 내에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8/10
근래 호러 영화 중에 본연의 목적에 가장 충실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