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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서 김태림 Jan 18. 2021

"좋은 매니저"란

오락가락하지 않은 명확한 지시 =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

최근 본 인터뷰에서 기억나는 질문 하나를 받았다.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며 어떤 유형의 매니저를 좋아하냐는 질문이었다. 지금까지 지원자로서 이런저런 면접들을 보기도 하고 채용자 입장에서 다양한 인터뷰 진행도 해보았지만 일하는 유형에 대한 질문은 처음이었다. 나는 시작과 끝이 확실한 프로젝트 형식의 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동기부여를 주고, 오락가락하지 않은 명확한 지시를 하며 더 나아가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피드백을 줄 수 있는 매니저를 좋아한다. 안타깝지만 아직까지 이 모든 삼박자를 다 갖춘 매니저는 만나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갑작스럽게 같이 일했던 전 직장 동료들의 해고 소식을 들어서 일까 매니저의 중요성과 함께 좋은 매니저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동기부여>

먼저 학교 카페테리아 인사업무를 했을 때 ‘승진’이라는 명확한 동기부여를 준 매니저가 있었다. 주로 학부 2,3학년 때 처음 시작해서 4학년 때쯤 Level 2 HR student Assistant에서 Level 3 HR student supervisor 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매니저는 우리에게 일한 기간과 상관없이 체크리스트에 나와있는 것들을 다 할 줄 알고, 그것을 Level 3 HR student supervisor와 본인에게 확인받으면 바로 Level 3로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Level 3 가 되면 기본 시급이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level 2 들 사이에서는 하나라도 더 빨리 배우고 사인을 받아 체크리스트를 마무리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사실 팀 내에서 그동안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암묵적으로 “payroll” (급여)를 담당했던 친구는 급여만 하고, 신입 오리엔테이션 쪽을 담당했던 친구들은 신입 오리엔테이션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우리에게는 매일 끝내야만 하는 업무, (payroll, (급여), attendance, (출석체크), 이메일 질문 답장, 급한 스케줄 변경) 같은 일들이 있었지만 고정적으로 그 일을 하던 팀원이 빠지는 날에는 서로 그 일을 미루다가 결국 끝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사실 오래 일했지만 항상 해오던 일 만 했기 때문에 level 2 중에서 HR 업무의 전반적인 것을 다 할 줄 아는 친구가 없었다. 그 시점에서 매니저의 제안은 신선했고,  오히려 신입이었던 나와 동기가 기존의 level 2 들을 제치고 먼저 승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매니저는 그동안 설렁설렁 일했던 기존의 Level 2들에게 자극을 주고자 신입이었던 나와 동기를 이용해 팀 전체의 선의의 경쟁을 유도했고, 특정한 사람이 없어도 하루의 업무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개월만에 끝낸 애증의 체크리스트


<성장할 기회를 주는 사람>

 그다음은 “기회는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가르쳐 준 매니저이다. “Diversity& Inclusion”, (다양성과 포용성) Intercultural (다양한 문화의 융합교육)의 세계를 알려 준 국제교류처 매니저인데 지금 다른 학교로 이직하셨지만 이분과 함께 한 경험 덕분에 현재 대학원에서도 유사 프로그램 인턴을 하고 있다.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국제학생들은 1주일 동안 따로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다. 대략 140개국에서 온 800명의 학생들을 기숙사 지역별로 나누고, 오리엔테이션 리더들의 지휘 아래에 진행된다. 이때 학교 소개뿐 아니라 수강신청, 공부법 등 다양한 정보를 배우기도 하고, 대학시절 첫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이때의 경험이 좋아서 일까  3학년 때 오리엔테이션 리더를 지원하게 되었고, 면접 때 처음 매니저를 보게 되었다. 나의 이런저런 경험을 들어보시고는 오리엔테이션 리더 합격과 함께 당시 국제 교류처의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던 “Global Spartan Leader”에 나를 추천해주셨다. 이 프로그램은 12명의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을 뽑아 장학금을 주고 매주 다양성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이때 1년에 8000불, 다음 해에는 멘토로 1년에 4000불 총 12000불의 깜짝 장학금을 받아 부모님의 학비 부담에 도움을 드렸다.) 아무래도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기에 학교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이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운 좋게 그다음 해에는 그분 밑에서 International Orientation and Educational Program Intern으로 100명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리더들을 뽑고, 교육자료를 만드는 일을 함께했다. 그때 배운 리더십 수업들은 훗날 HR 업무 중 오리엔테이션 자료를 만들 때 큰 도움이 되었고, 특히  행사를 진행할 때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 교육자료를 만들때 우리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행동이지만 특정 문화권에서는 논란이 될 수 있기에 신중하게 단어 선택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해주었다. 그리고 아직은 부족한 신입이지만 더 큰 물에서 놀 수 있도록 끝까지 믿어주고 끈임없는 기회를 주는 것 또한 매니저의 역할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런 분들 이외에도 신입인 나의 사소한 아이디어 하나까지 메모하시던 분, 작은 일에도 항상 피드백을 주시고, 칭찬을 주셨던 매니저분들까지, 나에게 동기부여를 주고, 성장할 기회를 준 매니저들은 많았다. 하지만 정말 배우고 싶은 매니저는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실질적인 일은 Assistant Manager (대리급) 직원들이 잘할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조직 위치상 가장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그들이기에 일을 배우려면 신입 입장에서는 이 분들이 최고다. 하지만 매니저에게서는 어떻게 잘 업무 분담을 해주고 적절한 피드백을 주는지를 배울 수 있다. 실질적인 업무는 대리급 직원들이나 밑에 직원들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잘 시키기 위해서는’ 일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고 있어야 하고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사실 부하 직원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총대를 매는 매니저들을 현실에서 보기 어렵다. 자신들의 밥벌이가 달려있는 일인데 드라마에서 나오는 멋진 부장들처럼 소신 있는 역할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믿음,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명확한 지시를 할 수 있고 주도적으로 팀원들을 이끌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수많은 매니저들이 오락가락하고 결정을 하지 못했던 것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은 곧 업무 이해가 부족하다는 뜻이고, 그것은 따로 공부를 하거나, 밑에 직원들의 보고서나 회의를 통해서 참고할 수 있다.


언젠가 나도 어느 조직의 매니저가 되는 그 날이 올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완벽한 매니저는 될 수는 없겠지만 비슷하게 흉내를 내려면 지금까지 만난 다양한 매니저들의 좋은 점 (동기부여, 큰 그림 보기,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주기) 만 기억하고 꾸준히 내 분야의 내공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매니저’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추상적이고 거창한 말이지만 어쩌면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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