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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토끼 Aug 23. 2020

우리 사이, 적당한 거리두기

가까운 관계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나는 귀를 닫은 지 오래다. 본인이 뛰어난 판단력과 식견을 가져서 높은 차원 조언을 하는 양, 나를 위한다는 번지르르한 포장지 속 자신의 자만심과 우월감을 채우려는 속셈인 말에 대해서 말이다. 갈대같이 이리저리 휩쓸리던 청소년기를 지나, 이제는 제법 머리가 커져 더욱 이런 부류에 말에는 치를 떨던 나였다.    

 

그러다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몇 달째 치과 진료를 미루는 엄마와 동행해 근처 치과에 상담을 받으러갔다. 임플란트 상담을 받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엄마는 치과 상담받을 때마다 찍어야 하는 엑스레이 비용이 낭비며, 상담받으려고 기다리는 것도 싫다고 가격만 물어보고 가자는 말만 반복했다. 그에 나는 사후관리도 해주고 가격도 합리적인 치과를 찾으려면 상담도 세 군데는 받아야 한다고 받아쳤다. 하지만,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방문한 5곳의 치과 중 1곳에서 밖에 상담을 받지 못했다.     


 만만찮은 잔소리꾼인 나는 온종일 엄마에게 상담을 더 받는 것이 최선이라면 채근했다. 하지만, 앵무새처럼 우리는 서로 대기시간 짧고 가까운 곳이면 된다, 나는 적어도 세 군데는 상담을 받아봐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제 풀이 지친 것은 내 쪽이었다. 아무리 말을 한들 철옹성 같은 엄마의 고집에 균열하나 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심히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치아 관리도 잘하시고 좋은 곳에서 진료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인데 이렇게까지 고집부리실 일인가?’ 이내 나는 지금 내가 혐오하던 언행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 엄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며, 내 생각을 엄마에게 강요했다. 선택할 때 엄마는 여러 군데 비교하기보단, 가깝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다. 나처럼 여러 선택지를 비교·분석해보면 더 나은 조건을 찾을 순 있지만,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오는 피로감과 귀찮음이 싫을 수도 있다. 나는 나의 선택과 판단이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엄마에게 도움이 된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 과정에서 엄마의 취향과 선호는 빠져있었다. 오히려 엄마에게 ‘엄마가 내가 제안한 선택을 하면 좋지만 하지 않아도 좋아.’라고 마음의 거리를 유지했더라면 이런 갈등과 답답함을 줄었을 것이다.      


고슴도치처럼 우리 사이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가 필요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아끼고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이렇게 하면 참 좋을 텐데’라는 따뜻한 마음을 넘어서 ‘이게 맞는데 왜 이렇게 안 해?’라는 강압적인 태도가 되기 쉽다. 친밀한 사이일수록 서로의 생각과 가치가 다름을 존중하고 내 생각이 옳다는 독단적인 마음을 경계해야겠다. 이렇게 우리 사이에는 나와 네가 다름을 인지하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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