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 Nov 04. 2022

002. 간맥을 좋아하세요?

네 저는 엄청 좋아해요!

  딸아이가 좋아하는  가지 단어 중에 하나, 간식. '우리 간식 먹을까?'라고 말하면 어떤 날은 장난감을 집어던지고,  어떤 날은 뒹굴거리다 벌떡 일어나서, 아주 가끔은 울음을 멈추고 웃으며 '뭐야?'라고 물으며 좋아한다.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끼니 사이에  끼어든  시간만큼은 분명한 행복일 거다. 그리고 서른여덟의 내가 좋아하는  가지 단어 중에 하나, 간맥. 풀어서 간단하게 맥주  . 혹시라도 우는 중에 누군가 '우리 간맥 할까?'라고 물으면 나는 웃으며 '뭐야~ 그걸 말이라고 ?'라며 맥주를 벌컥 마시겠지. 물론 간단한 한잔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선배, 깐단하게  잔만 할까요?'간맥의 시작은 야근의 끝이었다. 진짜 밥먹듯이 야근하던 시절  가는 시간이 다가오면 이렇게 말하는 후배가 있었다. '선배 깐단하게 한잔만 할까요?' 간단을 ''단이라고 말하고,    먹을 거면서  ''이라고 말하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 집에  ..'라고 말했지만 나는  말이  웃기고 좋았다. 그래서 말과는 다르게 집이 아닌 술집에 갔다. 그래야 진짜 야근이 끝난 거 같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고 보상받는 거 같았으니까. 늦게까지 하는 술집이 별로 없는 남대문에서 겨우 알아낸 허름한 술집에 앉아 깐단하지 않은 맥주를 마셨다. 방금까진 죽을 것 같았던 몸이 다시 살아났다. 가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즐거웠고 15시간째 깨어있는데도 힘들지 않았다.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주로 했고, 웃음이 멈추지 않게 밑천이 드러날 때까지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맥주 한잔의 힘으로, 야근을 가능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카피님, 이따 밤에 간맥?' 야근도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은 요즘도 맥주를 마신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정말 간단해져서 맥주 각 두 잔, 혹은 소주 각 1병. 절대 열두 시를 넘기지 않는다는 것. 애써서 절제하는 건 아니고 그냥 몸이 그렇게 됐을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조금 고민한다는 것. 물론 지켜지지 않겠지만. 밤에 술을 마시는 것이 쉽지 않은 요즘, 진짜 간단한 맥주 한잔을 마시면, 맥주의 온도만큼 속이 시원해진다.


'그럼 뭐... 간단하게 한 잔 하지 뭐' 날씨가 좋아서, 집에 가기엔 이르고, 일을 하기엔 늦어서, 일이 잘 끝나서, 갑자기 숨 돌릴 틈이 생기거나 그 틈이 없으면 미쳐버릴 거 같아서, 혹은 해야 할 말이 있는데 커피 한잔으론 꺼내기가 어려워서. 아니면 그냥. 이유가 무엇이든 눈앞엔 맥주 한잔이 놓인다. 그 한잔이 날씨에 환상을 더하기도 하고, 짧은 여행이 되기도 하고, 마음의 벽을 허물기도 한다. 아주 쉽고 빠르게. 인생은 간단하지 않지만, 그 인생을 잠시 간단하게 해주는 간맥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럼, 오늘도 간단하게?

매거진의 이전글 001. 식어빠진 맥주도 맥주잖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