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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Dec 19. 2022

003. 여름보다 겨울입니다

맥주 마시기 좋은 계절은

딸기를 샀다. 딸기를 사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사는 올해의 첫 딸기는 꽤 대수로운 일이다. 딸기를 먹기 시작하면 겨울이 왔다는 뜻이고, 비싸던 딸기값이 떨어지면 겨울이 깊어졌단 이야기. 그리고 거리에서 두 팩에 오천 원씩 팔리기 시작해 잼이 되거나 우유가 되면 겨울은 끝이라는 뜻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과학적이긴 하지만 흐릿한 계절의 경계를 조금이나마 선명하게 해 주는 데는 도움이 된다. 그런 특별한 딸기를 샀고, 그날은 때마침 12월 첫날이었다.


겨울과 12월. 내가 좋아하는 계절에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연말을 핑계 삼아, 방어를 이유삼아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운 사람들과 함께 술에 취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따뜻한 작은 술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쓸데없는 이야기를 꽤 심각하게 나눌 수 있어서. 남아 있는 연차를 모두 올리고 특별한 계획 없이 고향집에 내려가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뒹굴거릴 수 있어서. 조촐하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 볼 수 있어서.(가만히 누워서 캐롤만 들어도 세상은 크리스마스!) 빠르게 밤이 되고, 천천히 아침이 오는 시절이라서. 펑펑 내리는 눈이 있어서. 혹은 쨍하고 깨질 것 같이 차가운 공기로 가득한 새파란 하늘이 있어서. 그런 날 입으로 숨을 쉬면 훅 하고 들어오는 찬 바람과 차가워진 속을 녹이는 따뜻한 커피가 있어서. 좋아하는 코트와 니트를 매일 입을 수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바깥이 추워질수록 높아지는 안의 온기를 품고 차가운 맥주를 마실 수 있어서. 12월은 언제나 옳고 가장 좋다.



12월이 되면, 하던 것들을 멈추고 지키지 못한 올해의 다짐이나 약속을 일단 다음 달로 다 미운다. 그리고 올해를 끝낸다. 내 마음속 2022년은 이미 끝난 해니까, 달력에 남아있는 12월은 잉여의 달이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은 일들로 시간을 낭비해도 된다. 뭐 해낸 것은 없지만, 다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잘 버텨낸 나를 칭찬하면서, 확실하진 않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을 1년의 며칠을 기리면서 맥주를 마신다. 계절처럼 차갑게 식은 사이들을 아쉬움 없이 훌훌 털어내기도 하고, 뜨근하게 달아오른 새로운 감정들을 내년까지 잘 이어가며, 조금 아쉬워진 끝을 달래며 맥주를 마신다. 지난 시간을 마시고, 다가올 2023년을 채우면서.


"열심히 보낸 한 해, 분명 지금 온 나라가 같은 마음일 거예요.

모두 잘 해내셨습니다. 2022년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포상 프리미엄몰츠. 갑시다!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 나는 또 맥주 마시기 좋은 계절은 봄입니다.라고 할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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