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라는 좋은 이유
평소와는 답지 않은 옷을 입거나, 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해도 괜찮다. 오랫동안 담아왔던 마음을 전하는 것도 좋다. 혹은 문득 생각나는 사람에게 연락해 마주 앉을 수도 있다. 우리에겐 크리스마스라는 좋은 이유가 있으니까.
어릴 땐, 갖고 싶었던 선물을 크리스마스날 받을 수 있었고, 어른이 되고 난 후엔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갖고 싶었던 것을 살 수 있었다. 내년 봄의 나까지 힘을 합쳐야 하는 것도 기분 좋게 샀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니까. 연애시절에 이날은 더 말할 것도 없다. 12월 중, 아니 1년 중 가장 뜨거운 날이 이었으니까. 가진 옷 중에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와인 맛도 모르면서 괜히 값 비싼 와인을 마셨다. 크리스마스가 끝나는 날까지 함께하려고 애썼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연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사귀는 것도 안 사귀는 것도 아닌 그런 사이에도 이 날은 좋은 이유가 됐다.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도, 누군가의 숨겨둔 마음을 꺼낼 수도 있는. 법이 허락된 범위 안에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날이었다. 솔로인 시절에도 그랬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 평소보다 더 많은 술을 마셨다. 산타가 선물을 주는 대신 숙취를 가져갈 거라 믿으며 술로 채워 즐거운 솔로들의 밤을 보냈다. 정신이 드는 아침엔 꽤 쓸쓸하고 씁쓸했던 거 같지만.
그런 날들을 보낸 지금은 그저 휴일이거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맥주를 마시는 정도의 날이 되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괜히 즐겁고 설렌다. 좋은 일이 일어날 거 같고 25일 아침은 날씨와 상관없이 포근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니까.
서른일곱 번째 크리스마스. 역시나 어떤 소란 없이, 만취하는 나 없이, 반짝이는 새로움이나 떨림 없이 고요하고 거룩하게 지나갈 것이다. 유일하게 반짝이는 트리를 앞에 두고 맥주를 마시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날을 다행이라 여기고, 미리 올 한 해를 기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 괜찮다. 변함없이 찾아오는 크리스마스가 있고, 언제든지 이 날은 좋은 이유가 되어줄 테니까. 그리고 그때도 함께할 맥주가 있을 테니까.
모두에게! 미리. 비어.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