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젊음의 기억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식사
Breakfast at Tiffany's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드리 헵번의 1961년 작 티파니에서의 아침식사를 처음 본 건 내가 고등학생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세상의 넓이와 무게를 모르는 시절이어서였을까? 아름다운 여인이 창가에 앉아서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던 영화,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청춘의 남과 여가 빗속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캣이라고만 불리던 고양이와 미래를 약속하듯 포옹하면서 끝나는 영화로만 기억되던 이 영화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세월의 먼지를 털어내고 선명한 색상과 함께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90년대 후반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컬러 복원 기술의 발전은 많은 흑백영화들에 색상이라는 생명력을 불어넣기 시작했고, 가끔은 계속 흑백이었어야만 하는 영상에 짙은 메이크업 같은 부자연스러움을 연출? 하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에 그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불가능할 것 같았던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 준 매직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주인공 헐리가 티파니의 시그내쳐 블루 색상의 눈가리개를 하고 이웃집으로 이사 온 폴을 처음 만나는 장면이나, 오렌지 색상의 원피스를 입은 채 오렌지색 고양이를 싱크에서 내리는 장면, 창가에 앉아 썬버스트 브라운 컬러의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문리버를 부르는 장면은 이미 흑백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마치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어린 시절 컬러 사진을 보는 것과 같은 아련한 기쁨을 준다.
얼핏 보면 로맨틱 코메디 영화의 원조 같이 보이는 이 영화는 하지만 이제 시간의 침착과 함께 세월의 아련한 추억이 스며든, 흡사 조빔과 질베르토의 보사노바 음악과도 같은 영화이다. (결국 헐리가 마지막에 브라질로 가지 않고 고양이와 폴을 선택했지만 말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 듯 이 영화도 나이가 들어 현재가 어느새 과거가 되고, 헐리와 폴이 함께 비를 맞으며 맨해튼의 한 뒷골목에서 서있던 순간도 이제는 그들이 노부부가 되어 회상할 수 있는 그런 추억이나 아니면 둘 중 하나만이 어렴풋이 기억하는 그런 장면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무비스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나름의 고민과 풍파가 없었겠냐마는,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로는 죽을 때까지 그 외모만큼 아름다운 삶을 산 오드리 헵번, 그녀의 젊은 시절 톡톡 튀는 개성으로 헐리라는 주인공은 원작 소설에서 화면으로 옮겨져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동시대를 산 사람들과 나처럼 세월이 좀 지난 후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한 세대들 모두는, 이미 추억이 돼버린 헐리와 폴이 맨해튼이라는 공간에서 우연히 만들어낸 도시의 어설픈 사랑 얘기에 작은 감동을 받고 나서 다시 우리네 일상을 이어간다. 영화라는 것이 주는 매력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한 2~30년 후 어느 날 갑자기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 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그 세월을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는 증거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