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린 Dec 19. 2023

우리의 일상엔 항상 시어머니가 함께 했다

호주인 시어머니와 나#4

시어머니는 하루에 한두 번씩 우리 집을 방문하시고 계신다. 가끔은 시어머니가 반가웠고 가끔은 불편했다. 내가 왜 불편함을 느끼는지 그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2주 정도가 흘렀다. 그 사이 남편이 평소와 달라진 것 같았다. 남편의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딱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내 감정 기복도 심해졌다. 이성적 사고를 하다가 극단적인 감정 변화를 경험하곤 했다. 남편과 함께 웃는 시간보다는 서로의 기류를 살피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뭔가 잘못되었다.

10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절친이었다. 밥도 둘이, 운동도 둘이, tv도 둘이, 둘만의 시간은 평온했고 익숙했다.
우리에게는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이 당연했고, 그래서 우리 관계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 익숙함들이 이젠 없어졌다. 우리의 일상엔 항상 시어머니가 함께 했다.  시어머니의 등장과(그리고 그녀와의 뜨거운 동행으로 인해) 우리 사이에 특별함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맞는 말이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좀 더 솔직해져 보자. 질투가 났다. 남편이 나 없이도 배를 굶지 않고, 아무런 불편함 없이 그의 일상이 유지되는 것이 싫었다. 내 자리를 시어머니가 대체한 것 같았다. 시어머니를 질투한다는 게 가능한가? 부끄럽게도, 가능하다.


이 질투심, 원초적인 감정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누군가의 행동(그러니까 이 상황에서는 남편이겠지)과 자연스러운 교류(시어머니가 아들을 만나러 매일 우리 집에 오는 거) 통제하는 것?

질투와 통제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할뿐더러 불가능하다. 매번 시어머니가 우리 집을 방문할 때마다 남편은 내 심기를 살펴야 하고, 이 상황이 지속될수록 갈등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는 원하지 않는지에 대해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질투하는 마음을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딱 하나 해결하지 못한 내면의 질문이 남아 있었다. "남편과 나의 관계가 소중하고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화두로 며칠 동안 우리 사이를 관찰해 보았다.

우선은 질투심을 내려놓으니 내 마음이 편해졌고 남편도 편안해했다. 남편의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그래서 내가 더 행복해졌다. 그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하구나 그런 사소한 깨달음이 있었다. 또한 내가 남편에게 재잘거리거나, 또는 남편이 재잘거릴 때, 정성껏 들어주는 노력을 하기로 했다. (그다지 중요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 잘 들어주는 게 서로를 아끼고 있다는 일종의 증표라고 할까?  


우리는 그렇게 실천했고 이런 실천들이 쌓여,
시어머니가 깊숙이 들어온 우리의 일상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오후 산책
작가의 이전글 유튜브 적당히 보기 운동 1년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