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린 Dec 26. 2023

시어머니가 나를 위해 요리를 하는 이유

호주인 시어머니와 나#5

요즘 나는 시어머니가 해 주시는 채식 요리를 즐기고 있다. 늘 고기를 잡수시는 시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채식 요리를 들고 오신다. 평소엔 절대 채식 요리를 만드실 일이 없다. 닭고기, 소고기, 양고기를 샐러드에 곁들어 드시는 전형적인 서양식을 즐기신다.

시어머니가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실 때도 고기가 기본이다. 그러니, 몇 주 동안 시어머니께서 들고 오신 채식 요리는 온전히 나를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믿기지 않는다.

우리가 몇 주 동안 동거를 해야 했을 때 마주했던 불편했던 경험이 시어머니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자. 몇 년 전 기억으로 되돌아갈 필요도 없이, 그저 한 달 전을 떠오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저녁을 준비하신다고 하셨다. 메뉴는 당연히 고기, 그리고 삶은 채소들. 나는 잠시 볼일이 있어 저녁 식사에서 빠졌다. 남편(내 남편)의 보고(?)에 따르면, 그가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기 전 삶은 채소를 조금 덜어 반찬통에 따로 덜어 놓았다. 이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는 시어머니에게, 남편은 내 와이프가 나중에 배고프면 요기 삼아 먹을 수 있도록 따로 남겨 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어머니는 남편(자기 아들)에게 짜증 섞인 말투로,  며느리에게 같이 먹자고 , 권유는 했다는(?) 항변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며느리가 눈치 없이, 감히 이 음식들은 다 시어머니의 아들만을 위한 것임을 알면서 겁 없이 '네,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듯 시어머니는 우리 셋이 한 집에 살아도 오로지 아들과 본인을 위해서만 요리를 하셨다.

결혼 초반에는 너무나도 노골적인 자식 사랑에, 감정이 상하고 서글프기도 하였지만, 어쩌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시어머니의 집을 방문할 때는  내가 먹을 음식은 내가 요리하자 주위로 바뀌게 되었다.
나는 내가 돌본다!

그랬던 시어머니가 왜 나를 위해 요리를 하시는 것일까?

자신이 끔찍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일종의 뇌물?
 "며느리야, 내 아들 잘 부탁하네" 하는 그런 것?
 
또는 이젠 우리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아들(내 남편)을 보려면 나를 만나야 하는 필연적 상황을 받아들이시고, 본인도 나를 어느 정도 챙기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피력하기 위한 결과물(요리)인 걸까?

처음엔 오븐에 넣고 구운 채소 달걀요리, 그다음에 호박파이, 병아리콩 요리.
온전히 나를 위한 요리를 즐기는 요즘이다.
무슨 호사를 누리는 건지? 그래서 먹자마자 시어머니께 감사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왜 음식이 맛있었는지 피드백을 해 드린다.  
남이 해 주는 건 무조건 다 맛있다.
아무렴 어쩌랴. 기분 좋은 변화이다.  기쁘게 받아들이리라.

시어머니표 계란 요리, 블루베리 머핀.
작가의 이전글 우리의 일상엔 항상 시어머니가 함께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