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하루에 한두 번씩 우리 집을 방문하시고 계신다. 가끔은 시어머니가 반가웠고 가끔은 불편했다. 내가 왜 불편함을 느끼는지 그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2주 정도가 흘렀다. 그 사이 남편이 평소와 달라진 것 같았다. 남편의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딱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내 감정 기복도 심해졌다. 이성적 사고를 하다가 극단적인 감정 변화를 경험하곤 했다. 남편과 함께 웃는 시간보다는 서로의 기류를 살피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뭔가 잘못되었다.
10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절친이었다. 밥도 둘이, 운동도 둘이, tv도 둘이, 둘만의 시간은 평온했고 익숙했다. 우리에게는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이 당연했고, 그래서 우리 관계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 익숙함들이 이젠 없어졌다. 우리의 일상엔 항상 시어머니가 함께 했다. 시어머니의 등장과(그리고 그녀와의 뜨거운 동행으로 인해) 우리 사이에 특별함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맞는 말이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좀 더 솔직해져 보자. 질투가 났다. 남편이 나 없이도 배를 굶지 않고, 아무런 불편함 없이 그의 일상이 유지되는 것이 싫었다. 내 자리를 시어머니가 대체한 것 같았다. 시어머니를 질투한다는 게 가능한가? 부끄럽게도, 가능하다.
이 질투심, 원초적인 감정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누군가의 행동(그러니까 이 상황에서는 남편이겠지)과 자연스러운 교류를(시어머니가 아들을 만나러 매일 우리 집에 오는 거) 통제하는 것?
질투와 통제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할뿐더러 불가능하다. 매번 시어머니가 우리 집을 방문할 때마다 남편은 내 심기를 살펴야 하고, 이 상황이 지속될수록 갈등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는 원하지 않는지에 대해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질투하는 마음을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딱 하나 해결하지 못한 내면의 질문이 남아 있었다. "남편과 나의 관계가 소중하고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화두로 며칠 동안 우리 사이를 관찰해 보았다.
우선은 질투심을 내려놓으니 내 마음이편해졌고 남편도 편안해했다. 남편의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그래서 내가 더 행복해졌다. 그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하구나 그런 사소한 깨달음이 있었다. 또한 내가 남편에게 재잘거리거나, 또는 남편이 재잘거릴 때, 정성껏 들어주는 노력을 하기로 했다. (그다지 중요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 잘 들어주는 게 서로를 아끼고 있다는 일종의 증표라고 할까?
우리는 그렇게 실천했고 이런 실천들이 쌓여, 시어머니가 깊숙이 들어온 우리의 일상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