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막내아들을 끔찍이 아끼신다. 일종의 아픈 손가락이랄까? 시어머니의 막내아들은 내 남편의 일란성쌍둥이 동생이다. 글을 쓰는 동안만은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이라고 적어 보겠다.
우리 집과 시어머니 집 그리고 도련님의 집은 10분 이내거리에 있다. 올해 초, 시어머니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겪으시면서 우리 부부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오셨다.
시어머니는 도시 생활에 대만족 중이시다. 장성한 자식 세 명을 돌보면서 행복해하신다. 특히 막내아들(남편의 쌍둥이 남동생이자 내 도련님)을 돌보는 데에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신다.
시어머니의 일상은 다음과 같다.
매일 도련님의 출퇴근 운전을 담당한다. 그다음은 도련님의 반려견을 산책시킨다. 그리고 도련님의 집에서 깨끗이 청소를 하고 다음 날 입을 출근복을 다리미로 반듯하게 달인다. 도련님이 먹을 점심과 저녁을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도련님이 퇴근할 쯤이면 되면 회사 근처에 가서 픽업을 한다. 그렇게 도련님 돌보기 일정 완료. 시어머니의 모성애는 멈출 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아주 기가 막혀하는 한 사람이 있으니, 그건 바로 내 남편.
남편은 돌봄을 무한 제공(?)하는 시어머니나, 돌봄을 당연하게 받는 본인의 쌍둥이 남동생을 이해할 수 없어했다. 나 역시도 도련님이 엄마에게 심하게 의존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시어머니가 도련님 집에 가서 무거운 짐들을 옮기고, 청소하고 난 뒤 온몸이 쑤시다고 스쳐 지나가듯 말을 할 땐, '아이고 이 놈아, 왜 무거운 짐을 엄마에게 들게 하냐. 이제 그런 건 직접 하면 안 될까?'하고 도련님 흉을 보기도 했다.
작용과 반작용이라고, 남의 흉을 보고 나니 자연스레 내가 알고 보고 듣는 게 다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내면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막내아들에게 돌봄을 제공하며 시어머니는 삶의 목적 (purpose)을 찾았고, 특히나 본인의 아픈 손가락인 막내아들을 돌보는 일이기에 시어머니가 느끼는 만족감과 보람은 두 배 이상이다. 시어머니가 막내아들의 반려견을 돌보는 일은, 시어머니의 적적함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뭐 이제는 하다 하다 막내아들 반려견 시중까지 드느냐고 속으로 불평했던 것을 반성한다.
우리 내외는 막내아들이 무조건 시어머니한테 받는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따져 보니 무조건 받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부부 내외가 누군가의 인생을 쉽게 판단했다.
최근, 시어머니의 차가 고장이 났다. 졸지에 시어머니는 도련님에게 출퇴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되었다. 시어머니의 얼굴은 막내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찼다. 시어머니에게 내 차 열쇠를 주며 일주일 간 맘껏 쓰라고 하자 바로 함박웃음. 내가 예상했던 대로 시어머니는 곧장 도련님 집으로 쌩하고 출동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