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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재 Jun 29. 2024

[영화 너 왜 그래] 인사이드아웃 2

애프터는 없어요

영화가 상영되는 1시간 30분 동안 옆에 앉은 10살 딸아이는 스크린에 눈을 고정시킨 체 몸부림을 쳤다.


"딸, 왜 그래?"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마 물어봤다면 살짝 화를 내며 귀찮다는 듯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나도 몰라!".


아이가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아이의 집중력 문제인지 재미가 없어서 그랬던 것인지 혹은 감각적 재미는 있지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량에 쳇기를 느낀 것 때문인지. 나는 정말 모르다.




오! 할리우드.


현란한 화면,  수많은 장르, 압도적인 정보량과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을 하나의  작품 안에 녹이며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만족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방정식을 한방에 풀어버린다. 또 그 솜씨가 가히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그동안의 노하우가 얼마나 많이 싸였는지 지구 반대편 작은 공간에서 1시간 30분 동안 솜씨를 자랑한다. 세뇌되어 버리고 압도되어 버린다.




영화는 질주했다.


웃겨 놓고 웃을 타이밍을 주지 않는다. 울려 놓고 울 타이밍을 주지 않았다.

어른과 아이들이 동시에 지루해할 타이밍을 면밀히 계산해 가며 컷의 길이를 음악의 길이를 잘라낸다. 스크린에서 후반작업 스텝들의 눈동자가 보일 지경이다.  그 눈동자를 상상하자면 이 사람들이 나를 뭘로 보는 건가 하는 개인적 분노가 일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래도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시스템이 요즘의 인간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보고 있지 면 금방 느꼈던 기술적, 내용적 감탄은 이 영화의 스피드만큼이나 빠르게 휘발된다.


발작적으로 전환되는 화면, 2배속?으로 몰려오는 대사의 쓰나미, 대서사시의 자간을 좁혀 단행본으로 만든 것 같은  볼륨감. 이 영화의 대본은 원래  2시간 분량이지 않았을까?


앞으로는 영화가 알약처럼 한입에 삼키는 형태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기술은 죽은 것을 살려낸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트로트 대결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그렇게 많은 가수들이 나오고 많은 노래들이 쏟아지는데 동시에 3~40년 전 노래들이 여전히 리메이크되고 공감을 살 줄은 몰랐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2~30년 전 노래는 그야말로 흘러가버린, 흘러가야 할 노래였다. 아무도 그것을 선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환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 처리 속도가 모든 것을 살려낸다. 속도가 난다는 것은 접근이 쉽다는 것이다. 쉬운 것은 좋은 것이다. 10년 20년 100년 전 음악들이 모두 그렇게 되살아난다. 죽어버려야 할 것들이 모두 현재에 살아 움직인다. 그것은 좀비이기도 하다. 시간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불교적, 양자역학적 시간의 부재에 대한 가르침의 실현인 것이다. 고로 신기한 현상이지만 그렇게 이상한 현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리 빨리 감기를 해봐야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홍대 거리를 걸어 보면 중국, 미국, 유럽, 몽골, 동남아  등 많은  언어들이 들린다.

주위를 둘러본다.

'이 도시가 그렇게 특별한가? '

어디서 본 듯 한 저 빌딩, 저 커피숍, 저 음식점.

그것들이 섞인 도시는 수많은 색이 섞여버린 탁한 특색이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가 만든 정체불명의 고급 비빔밥이다.

이 비빔밥의 맛은 강박이다.


"그래서 내가 싫다고?"

"아니 그 뜻이 아니라... 너의 마음을 잘 알지만 연락처가 궁금하지는 않아"


애프터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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