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공항냄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저녁 Jan 07. 2021

공항냄새



 첫 차를 뽑고 가장 들떴던 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공항으로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늦은 밤 일을 마치고 공항으로 드라이브를 떠난다는 건, 사회 초년생에겐 나름 엄청난 일탈이었다.


 부모님이 깨시지 않게 살금살금 까치발을 들고 찰랑이는 차키를 조심히 움켜쥐고 집을 나선다. 드라이브 플레이리스트를 빵빵하게 채워놓고, 도착지를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찍는다. 짙은 설렘을 품고 도착한 공항에는 새벽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공항 직원들 몇몇만 한산하게 오간다. 그들이 뿜어낸 출국의 설렘과 옅은 피로감으로 가득한 공기에 취해 우동 한 그릇 뜨끈하게 먹고 돌아오는 공항 드라이브.


 모르겠다. 공항이라는 지형지물 자체를 좋아하는 건지, 출국하는 것이 좋은 건지. 둘 다 일 수도 있겠다. 하릴없이 떠나는 나 홀로 공항 드라이브가 아니더라도, 진짜로(!) 출국하는 날에도 비행시간 4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는 게 내 출국 루틴이다. 괜히 사지도 않을 여행 용품을 구경하기도 하고, 카페에 혼자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공항이 가진 달뜬 기운을 만끽한다. 한국어와 외국어가 뒤섞이고, 러기지 바퀴 끄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셈.


 (주로 지하 1층 공항철도 센터 쪽 투썸플레이스를 애용하는 편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모르는 장소라 1층 출국장만큼 붐비지도 않고 오래 머물기에도 넓고 쾌적하다.)


 여러 공항을 가보았지만 역시나 가장 쾌적한 곳은 인천공항. 넓고,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다. 세계 1위 공항이라는 싱가포르 공항은 왠지 모를 인조적인 수목원 느낌이 내 취향은 아니었다. (싱가포르 도심에서 흘러나오는 가짜 새소리에 놀랐던 기억..)


 그럼에도 가장 그리운 곳은 프랑스 니스 공항이다. 공항 내 아무 카페에서나 사 먹어도 기본 이상은 훌쩍 뛰어넘는 빵맛, 유럽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분위기의 사람들, 할 수만 있다면 한가득 품어오고 싶은 남프랑스의 햇살. 작지만 와인, 향수, 식재료 등 있을 건 다 있는 면세점까지. 흑.


 꼭 니스 공항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곳에 첫 발을 딛는 그 기분은 언제나 설렌다. 비행기에서 승무원분들의 인사를 받으며 나올 때 느껴지는 공기의 냄새는 아직도 내 코 끝에 착 붙어있다. 귓가에 머물렀던 여러 나라의 언어들도, 입국장 특유의 피곤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와 짐을 찾을 때마다 불안한 그 마음까지도 생생하다.


 도시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느껴지는 감각들.


 언제쯤 다시 공항냄새를 맡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추억할 순간이 있어 감사한 일이라 여기며 오늘 하루도 안전하고 건강하길 바랄 뿐이다.



다음은 몇 가지 인상 깊었던 공항의 순간들


니스 공항

남프랑스에서 가져오고 싶었던 건 풍부한 식자재도, 로제 와인도, 향수도 아니었다. 모든 존재를 더욱 반짝이게 만들어주는 햇살을 담뿍 담아오고 싶었다. 샤갈과 마티스가 왜 남프랑스를 그리도 사랑했는지는 니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두바이 공항

살인적인 물가의 두바이 공항.. 사진 속 코스타 커피 두 잔, 머핀 하나를 먹고 2만 원 넘게 냈던 기억. 오래전 일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여하튼 뜨악했던 기억..


프랑크푸르트 공항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가져오고 싶었던 것은 바로 저 생맥주...


샤를 드골 공항

한창 유럽 테러로 분위기 살벌했을 때. 가방 안에 있던 모든 물건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기내용 지퍼백에 넣어간 소량의 액체류도 모두 검사지로 체크.. 거의 4시간 만에 탈출했던 날.

매거진의 이전글 습관성 항공권 증후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