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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미티스 Oct 01. 2023

축제, 그 장소에 대한 기억(1)

feat. 부산국제영화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부산영화제에는 여러 번 가보았지만, 특별히 글로 써서 남겨두었던, 2001년 제6회 부산영화제 후기를 소환해 본다. 축제와 장소에 대한 짧은 단상이 포함되어 있다.

     



항공편으로 장거리 비행을 하거나, 차창 밖으로 지나는 시원한 풍광을 배경 삼아 기차여행 끝에 새로운 땅에 도착하는 것을 나는 퍽 즐기는 편이다. 일상의 땅을 벗어나는 기쁨에다가 과거와 현재의 나를 알아보는 이 없는 낯선 땅에 익명의 이방인으로 떠도는 것이 좋다.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역마살이 있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장소가 전하는 영감 속에는 그곳의 흙과 공기, 물, 하늘, 사람과 역사가 어우러져 있고 나는 그저 우주의 한 원소가 되어 겸손해질 뿐이다.     


집안 어른의 생신이나 명절, 결혼식 같은 경사가 있을 때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이는 날이 있다. 맛깔스러운 음식을 잔뜩 차리고 고운 옷으로 단장을 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기념하고 축하하면서 고단한 삶을 잠시 접어두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재미난 놀이에 몰두하는 날. 우리는 적어도 일생에 몇 번쯤은 이런 잔칫날에 대한 기억이 있다. 나는 이런 여행과 잔치를 삶의 갈피 갈피에 끼워 넣는 추억 만들기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 지난 11월의 어느 날, 또 한 번의 여행과 잔치의 순간을 마음에 담아 둘 기회가 있었다.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이하는 부산 국제 영화제가 그 규모에 있어서나 내용 면에서 불과 수년 만에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국내외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다. 이런저런 일상사로 매번 기회를 놓치다가 올해는 여러 지인과 함께 소문으로만 듣던 부산영화제의 현장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토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부산행 새마을 열차에 오르니 소풍 가는 유치원생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국내에서 일고 있는 영화사랑의 열기가 영화제 참가작에 대한 인터넷 예매를 불과 2-3분에 마감시켰기에 수중에 있는 티켓이라고는 프랑스영화의 밤 리셉션 초청장에 포함되었던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 하나뿐이었다. 열차 안에서 우리 일행은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표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머리를 맞대고 무슨 상륙작전의 지휘관들처럼 공격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부산에 도착하니 상영관이 밀집한 남포동, 광복동 거리는 표를 구하려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여러 관련 단체에서 설치한 홍보부스 주변은 영화를 꿈꾸는 수많은 젊은이와 촬영 나온 카메라로 가득했다. 영화제 유치를 계기로 부산은 바야흐로 영화의 도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연중 크고 작은 페스티벌이 끊임없이 열리는 프랑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영화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문화예술 축제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안에 잘 녹아 스며들어, 삶과 예술이 하나인 것 같은 (그러나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는) 느낌을 받을 기회가 많은 축복받은 땅이다. 이런 축복은 예술가뿐 아니라 예술을 즐기며 사랑하는 애호가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국제 영화제의 칸이나 역시 그만큼의 장수와 명성을 누리고 있는 연극제의 도시 아비뇽, 음악축제가 열리는 액상프로방스 등은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이 될 만하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고난도 많고 비난도 많았으며 영광의 순간도 있었다. 우리의 현실에 비추었을 때 상대적으로 엄청난 숫자로 기록되는 행사의 규모와는 달리 이 도시들은 하나같이 인구 10만이 넘지 않는 아담한 곳이다.     


이미 19세기 산업혁명 이래 귀족과 부유층의 휴양도시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칸은 연중 50여 개의 국제회의, 십여 개의 문화예술 축제를 유치하고 있고, 서른 군데가 넘는 화랑과 18개에 이르는 영화 상영관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외향적으로는 라 크루아제트 해변의 최고급 호텔들이 보통사람들에게 때로 동경을 때로는 그만큼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제 기간 중 세계적인 스타들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앵글에 담느라 여념이 없는 사진기자며 파파라치들로 가득한 라 크루아제트, 개막식이 열리는 극장 앞 계단의 붉은 주단은 칸 영화제의 상표처럼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얼마 전 그 붉은 카펫을 생애 처음으로 밟아 본 한국의 모 영화사 대표와 노감독이 감격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만도 했을 것 같다.     


2010년 칸 영화제 팔레데페스티발로 들어가는 레드카펫 ©  KIL Hai Yon All rights reserved 2023


그러나 종려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칸의 해변과 영화제는, 50, 60 년대 문학과 예술의 선구자 정신을 기치로 내걸었던 고매한 교류의 장에서 멀어져 내게는 멋지게 치장한 고급 향수병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다. 이제 칸에서 영화는 더 이상 예술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에 진열된 상품일 뿐이며 우리 영화가 칸에 진출했다는 말은 유럽에서 인정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유럽 영화시장의 진열대에 자리를 마련했다는 뜻과 다름 아니라는 국내 영화전문지 편집장의 극단적인 발언이 설득력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영화제 기간 필름마켓이 들어선 칸 해변 © KIL Hai Yon All rights reserved 2023


연극제가 열리는 아비뇽은 이와는 퍽 다르게 다가오는 추억의 장소다. 굵직한 작품들이 오르는 교황청 내 임시극장, 그 앞의 광장을 중심으로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골목에는 크고 작은 극장과 박물관들이 들어서 있고, 건물의 벽마다 나붙는 수많은 공연 포스터는 그 자체가 예술인 데다가 거리 곳곳엔 퍼포먼스의 행렬이 줄을 잇는 곳이다. 저녁 공연을 알리는 배우들의 외침은 고독하고 가난한 자유의 함성이다. 밤늦은 시간에 막을 내리는 공연과 공연 후 나누는 한 잔의 술이 아니더라도 이미 이 자그마한 도시는 오래전부터 취기를 머금고 있었던 듯이 보인다. 작은 호텔 방에서 크루아상과 카페오레로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거리는 곧 남프랑스의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에 휩싸이고 일요일에 열리는 동네의 벼룩시장에서 마주치는 누르스름한 헌 책더미, 오래된 LP 디스크와 함께, 나는 다락방의 요지경 같은 잡동사니 속에서 세상을 발견했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었다.

(다음 편에 계속)   


  

연극제 기간 중 공연 포스터로 도배된 아비뇽의 거리 © KIL Hai Yon All rights reserved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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