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 조감도 : 2024년 5월
아래 내용은 '상봉 조감도' 뉴스레터의 2024년 5월 호입니다. 뉴스레터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여러분은 120분이 길다고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2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던 적이 있나요? 10분 이상의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도 지루하고 힘들다는 의견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도파민 과다 분비로 세상은 더 자극적이고 압축적인 콘텐츠로 뒤덮여 있죠. 자극과 압축이라는 관점에서 물론 영화도 그 흐름에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나름의 올곧은 뿌리로 그 자리를 단단히 지키고 있는 느낌입니다.
돌아보니 지난 호의 주제였던 와인을 영화와 함께 즐겼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알게 모르게 닮은 구석이 많은가 싶기도 하네요. 종류(장르)도 엄청 다양하고, 주조법(촬영 기법)에 따라 다른 느낌을 만드니까요. 쌉싸름한 와인에 달콤한 영화를 안주 삼아보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
그래서, 이번 호의 주제는 영화가 되겠습니다. 가장 큰 규모의 대중매체로서, 영화 역시 각자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도구로 작용합니다. 그 도구의 명확한 기반이라면 이야기, 스토리 라인일 테고요. 와인이 주는 알코올의 힘을 빌려, 영화가 드라마나 요즘의 유튜브 영상, 그리고 책 등의 콘텐츠와 다른 점을 생각해 봤습니다.
영화의 특징,
근데 이제 독특함을 곁들인.
먼저, 정해진 상영시간이 있고 그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콘텐츠를 소비할 때도 사람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몰두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한껏 디지털화된 세상 속에서 역시 전자기기를 통해 봐야 하기에 중간마다 울리는 카톡 알림이나 메시지 등에 주의가 분산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집니다.
그에 비해 영화관이라는 어두컴컴한 곳에서는 각종 방해 요소가 철저히 금지됩니다.(물론 지켜지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상영 전에도 몰입을 위한 안내를 제공하고, 관람객들의 개인적인 도덕과 규범을 통해 공간의 어두움과는 대조되는 명확한 지침이 유지되고 있죠.
그 다음은 개인적으로 한 편의 영화가 끝난 시점에 비로소 그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 순간에 갈고리처럼 걸려 있는 세계관을 들춰보며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다양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 번 더 영화의 숨은 의미를 파악하곤 하는데,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찾는 것처럼 신기함과 놀라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한, 영화는 그 기초가 되는 스토리를 다채롭게 보여주는 하나의 창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를 어떻게 시각화하는지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많은 경우에, 감독들은 원작을 적절히 각색하거나 연출 기법을 달리하여 영화로 재탄생시켜 그 감동과 전율을 배가시키기도 합니다. 최근에 즐겨본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시리즈가 가장 적합한 예시가 아닐까요.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담긴 이야기는 그 드넓은 세계관에 관객을 빠뜨리기 충분했습니다.
인생 영화가 무엇인가요?
MBTI와 함께 스몰토크의 재료로 꾸준히 사랑받는 '인생 영화'에 대한 물음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영화는 무엇인가요? 저는 방금 대단히 폭력적이고 상당히 강압적인 태도였습니다. 문득 생각이 들더군요. 단 한 편의 인생 영화를 말해달라고 하는 것은 그 하나로 상대방의 가치관이나 생각 등을 지레짐작하는 위험성이 있을 수 있겠다는 것 말입니다.
물론, 저를 포함해 여러분들의 지금껏 수없이 던진 이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인터스텔라]가 인생 영화임에도 '근데 너 문과잖아?'와 같은 답변이 돌아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거나, [라라랜드], [어바웃타임]을 안 봤다고 해서 '넌 감성이 없어' 등의 대답을 듣는 것이 불편할 뿐이지요. (실제로 그랬다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에 따라서,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인생 영화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인생 영화'라고 누군가 질문한다면, 1997년 개봉한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이 죽음을 앞두고도 아들을 달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과 함께 유쾌하고 우스꽝스럽게 놀이하는 모습 때문에요. 과연 '나도 죽기 직전의 상황에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하는 상상도 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느끼는 감정이나 대화의 주제,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 등에 의해 인생 영화를 다르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할 때는 [이프 온리]를 빠뜨릴 수 없겠죠. 또 수많은 패러디와 밈을 탄생시킨 [범죄와의 전쟁]이나 [범죄 도시] 등이 나올 수 있고요.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인생 영화'라는 단어 사이에는 꽤 많은 내용이 괄호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거나 당시에 가장 뜨겁게 사랑했고 차갑게 파헤쳤던) 영화'처럼요.
유튜브 채널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나온 것처럼,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사랑스럽고 기억에 남는 영화가 뭐야?" 등과 같은 질문으로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면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도 사랑스럽겠네요!
감상평을 감상하다
저 위의 질문에 답을 하자면 [그린나이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인상깊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 바깥에 새겨진 글들이 한몫했기 때문인데요. '왓챠피디아'라는 플랫폼에서 본 그린나이트의 감상평들은 글마다 다채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웨인의 영화 속 여정을 '성장우화'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작위적이며 뻔한 플롯과 걸맞지 않은 이미지들이 썩 어색하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몇 개의 글들을 읽고 나니,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잊을 뻔했다는 것은 안 비밀. 다시 이 영화가 왜 '나에게' 인상 깊었는지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이 평론들을 참고하며 본인의 의견과 비교해 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타인의 의견에 무의식적인 동의 혹은 비난은 올바르지 않으니 언제나 참고용으로만! 중요한 것은 본인의 생각일 테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러한 타인의 감상과 취향을 접하기 전에 각자의 생각을 먼저 정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흰 도화지에 본인의 생각을 스케치하고, 그 위에 다양한 색을 입히는 것!
N회차 기념 추천 영화
영화를 두 번, 세 번 혹은 그 이상 보고 싶었던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잊을 때만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맨프럼어스]라는 작품인데요. SF 영화로 분류할 수도, 미스터리 스릴러나 종교적, 철학적인 영화로 분류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제 한 줄 감상평은 '믿거나 말거나, 우리를 뒤흔드는 이야기의 힘'이라고 남겨봅니다.
주인공은 본인을 14,000년 동안 살아온 원시인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주변 인물들의 질문과 반박을 명쾌하게 풀어내며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들이 의심하고 믿게 만듭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온전히 주인공의 집 안에서만 흘러가게 되는데요. 겉보기에는 굉장히 단조로운 연출과 촬영 기법을 가졌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옆에 앉아 듣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스토리가 주는 힘이랄까요.
제한된 공간이 만드는 압박감, 긴장감이 오히려 득이 되는 경우는 [폰부스]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주인공 옆에 있던 공중전화에 의문의 전화가 걸려 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는, 누군가 쫓아오지 않아도 스릴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더 이상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직접 관람하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저는 이렇게 한번 빠지면 수도 없이 반복해서 보는 걸 좋아하는데요. 여러분들을 매료시켜 N회차 관람하게 만든 영화는 무엇이 있을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이것 참 영화같네
나누지 못한 영화들도 너무 많고, 지금 기억이 나지 않은 작품들도 엄청 많습니다. 그리고 때마다 달라지는 입맛과 취향으로 인해 언제는 공상과학 영화가 좋아지면서도, 어떤 때는 느와르 작품에 빠지기도 합니다.
작품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그리고 여러분들의 취향도 슬쩍 흘겨보고자 아래 작은 설문 링크를 만들었습니다! '두고두고 찾아볼 것 같은' 영화가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아마 그 영화가 여러분들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었다거나, 가장 슬플 때 위로가 되었거나 하며 다양한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겠죠?
https://forms.gle/nHJr3afCU3Q149zT6
진부한 표현이지만 '영화같은 인생'이라는 말은 그만큼 영화가 가진 가치, 속성이 풍부하다는 것이겠지요. 희노애락 혹은 기승전결이 알차게 짜여진 각본이 있는 듯 삶에서도 영화와 같은 순간들을 만나면서, 본인의 취향을 찾아보고 즐기고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