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핑계로 또 다이소에 들렀다. 출근하듯 매일 가다 보니 이젠 직원들은 나를 알아보는 눈치다. 이상하게 여겨질 법도 하다. 매장 곳곳을 한참 곰곰이 살피다간 겨우 몇 개 골라선 떠나고, 매일같이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으니까.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다이소 추천템' '이거 안사면 인간도 아님' 이런 걸 보고 무엇에 이끌린 듯 사오곤 하지만 막상 집에 가져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많아 박스에 처박히곤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번엔 다이소라서... '야식'에 중독되었을 땐 매일 밤마다 배고프지도 않으면서 몇만 원씩 배달음식을 시켜 먹어서 돈도 잃고 건강도 잃고 살도 엄청 쪄서 빼느라 몇 년간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언제부터 그랬냐고 묻는다면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난 중독이 잘되어서 질릴 때까지 해야 하고, 갑자기 어떤 충동이 들면 바로 실행을 해버려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제어가 잘 되질 않았다. 과거형으로 쓰고 있는 건 고치고 있는 중이라서 그렇다. 최근 난 주의력 검사를 통해 성인 ADHD 판정을 받았다.
그전까지 병원을 가지 않았던 건 그게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아서였다. 본격적으로 글을 업으로 삼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스트레스가 미친 듯이 심해져 마치 기폭제처럼 터져 병이 되어버렸다. 내가 병원에 갔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충동에 이끌려 해야 할 일을 하질 못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병원에 갔다.
11만 원짜리 주의력 검사를 받고 ADHD가 맞다는 소견을 받고, 콘서타라는 약을 먹기 시작했더니 전보다는 어느 정도 심한 충동이 조절되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배고프지도 않으면서 야식을 먹거나, 충동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마구 구매하던 것들이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처음에만 효과가 좋았고 그것도 어느새 슬슬 원 상태로 돌아왔다. 나는 사실 약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의사는 계속해서 용량을 올렸다. 사실 ADHD 말고도 항우울제나 수면제도 같이 처방받았는데 그건 약을 먹을 수준은 아니었다. 경미한 정도였지만 먹으면 도움이 될 거라고 해서 처음엔 아주 적은 용량으로 시작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니 약의 개수가 점점 늘어나 약봉지가 터지려 했다.
대부분은 기분 상태가 좋았어서 ADHD를 제외한 다른 약들은 안 먹으면 안 되느냐고 묻자 아직은 안된다고 했다. 뭐 인터넷에 쳐보니 항우울제는 한번 먹으면 6개월 이상은 먹어야 한다고 쓰여있긴 했다. 어쩌다 한번 기분이 안 좋거나 어쩌다 일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말할 때마다 약의 개수가 늘어나더니 지금은 중증환자급의 약을 처방받아오고 있다 보니... 이건 좀 과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에 감약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또 안된다고 했다. 그렇게 약을 먹어간지 거의 6개월째에 다다랐을 무렵 내 감정 상태는 꽤 괜찮았기 때문에 스스로든 혹은 병원을 옮겨서든 감약을 해서 약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왜냐하면 어찌 됐든 약은 보조제이기 때문에 결국엔 본인의 노력으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름의 ADHD와 관련된 뇌과학 공부를 해서 내 증상을 스스로 고쳐보기로 했다. 뭐든지 극단적이건 효과가 없기 때문에 나는 점진적인 방법을 취하기로 했는데 그건 바로 충동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바로 '미리 알림(아이폰의 기본 할 일 기록 앱)'에 적어놓기만 하는 것이었다.
예전엔 충동이 들 때면 바로 즉각 실행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충동이 들 때 바로 적어놓기만 해도 효과는 꽤 좋았다. 예를 들면 갑자기 '코인 노래방이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났다고 치자(실제로 코노에 중독된 적도 있다). 그리고 그걸 바로 '미리 알림'에 적어 놓는다. 그럼 신기하게도
'충동 - 적기 - 검토 - 보류 - 실행 또는 삭제'
로 바뀌곤 했다. 글로 적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 쓸데없는 거구나. 하고 '보류' 상태로 머물게 되고 잠시라도 충동이 잠잠해질 시간을 주면 당장 실행해야한다는 욕망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동이 가라앉지 않으면 나는 한번 더 심호흡을 하곤 정말, 정말, 정말로!!! 내게 필요한 것인지를 종이에 자세히 적어 면밀히 검토했다. 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 이 돈을 소비하는 것이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되고 실용적인가. 를 내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신랄하게 따져 물었다. 그럼... 보통은 아니 거의 90%는 아니어서 목록에서 삭제됐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다이소 그거 얼마나 한다고... 사면 어때. 그러게요. 처음엔 저도 괜찮은 줄 알았어요. 하하하... 하지만... 난 평생을 이래왔다. 충동이 들어 해야 할 일을 제쳐두고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거나 쓸데없는 것을 사는 행동들이 반복될 때마다 어느 순간부턴 성취가 아니라 끔찍한 기분이 느껴졌다. 또다. 또 내가 의지로 제어하지 못했다. 하는 패배감... 하지만 요즘엔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를 오랜 시간 괴롭혀온 충동을 이겨내는 나를 보면서 얻는 성취감이 정말 좋다.
물론... 아직 진행 중이긴 해서 오늘도 다이소엔 절대 안 간다고 해놓고선 어느새 사야 할 것들을 만들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심지어 필요 있다고 내가 나를 속였다) 그곳으로 향했다. 오늘 사려고 했던 것은 '공구함과 드라이기 걸이'였다. 요즘 용도별로 물건을 분류해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인데 충전기 선들을 놓을 곳들이 마땅치 않아 그것을 넣을 소형 공구함을 찾던 중이었는데... 너무 많이 와서 어디에 있는지 위치도 정확히 알고 있던 터라 내 발은 무의식적으로 26번 코너로 향했다. 그리곤 필요 없지만 사려고 했던 공구함을 들고는 한참을 만지작 거렸다.
아마... 내 마음에서 충동과 이성이 충돌하고 있어서였을 거다. 순간 감정을 다룬 애니메이션인 '인사이드 아웃'을 떠올렸다. 이성이 말했다. "야... 이거 솔직히 그렇게 필요한 거 아니잖아... 그냥 택배 박스 같은 데다가 집어넣던지 집에 비어있는 공간에 놓아도 되잖아. 정말 이게 필요해?" 그럼 나의 충동은 이렇게 답한다. "그렇게 필요하진 않은데... 그래두... 이게 가지고 싶어... " 그럼 이성은 다시 말한다. "왜?!" 충동은 자신 없이 답한다. "사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이거 2000원밖에 안 한다고..." 이성은 잠시 흔들리지만 말한다. "맞아. 하지만 사고 나면 또 다른 게 사고 싶어 질 거야. 이 ADHD를 가진 여자의 기분은 장기적으론 좋아지지 않아. 그 반대지. 내려놔."
그래. 쓸데없다... 인정하자. 공구함 따위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다. 드라이기 걸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결국 두 손에 든 물건을 전부 내려놓고 다이소를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직원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웬일이래. 오늘은 아무것도 안 사가네. 혹은 뭐 훔쳐간 거 아니야? 아니면 쟨 뭐 하는 애야?라고 생각했을 수도.
그리곤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주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했다. 버려야 할 물건들을 버리니 충전기를 넣을 공간이 생겼고, 집에 있던 놀고 있는 책받침대를 활용해 드라이기 거치대도 간단히 만들어냈다. 거봐. 쓸데없었잖아... 하. 이겨냈군. 이건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를 손에 쥔 골룸이 마이 프레셔스... 하고 눈이 뒤집혔다가 내려놓은 것과 같았다. 대단한 성취다. 스스로를 칭찬했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나아졌다. 상쾌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다.
물론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많지만... 요즘엔 그걸 이겨내는 재미와 성취로 산다. 예전엔 사람들이 알아주는 대단한 업적을 남겨야만 성취라고 생각했는데 그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는 것만큼 대단한 성취가 없다. 남들은 내가 이 대단한 성취를 이뤄낸걸 아무도 모르겠지만 먼 훗날 얻는 성취가 아니라 바로 지금 아주 어렵게 노력해서 얻어내는 순간의 성취라서 나에겐 그 무엇보다도 값지다.
그래도 나 혼자서만 알고 있긴 아까워서 자랑하려고 글로 남겨본다. 내일도 이끌린 듯 다이소에 갈 수 있겠지만... 왜냐면 내가 다니는 헬스장이 다이소 바로 옆이라서... 그땐 다이소가 아닌 다이어리 만들기에 중독되어 있어서 지금의 폐해가 일어날 줄은 몰랐다. 어쩔 수 없다. 1년이나 끊어버렸으니...
하지만... 이겨낼 수 있다. 매일 다이소에 가더라도 아니 헬스장에 가더라도 그래서 빨간색 다이소 간판이 내 눈앞에 어른거려도...! 안 사면 된다. 그게 더 대단한 거야. 나는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