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초보 아빠로 오해받은 것 같다.
아빠 혼자 공원에서 아기를 보면 벌어지는 일
날이 좋았다. 봄이 왔고. 우리 가족은 모두 다 코로나에 걸렸다가 나았다. 도저히 밖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오랜 기간 집 안에 콕 박혀있던 터라 뜨뜻한 태양 빛과 바람 냄새가 그리웠다. 어딜 갈까 고민을 하다가 하남에 조정경기장에 가기로 했다.
높은 건물이 많지 않은 탁 트인 전경을 보니 기분이 한껏 상쾌했다. 조정을 하는 곳이라 자연은 아니지만 어찌 됐건 사람은 물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나 보다. 새가 낮게 물 위를 나는 걸 보니 설마 물고기가 있는 건가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우리 말고도 사람들이 나와서 도란도란 산책을 했는데, 아주 많지는 않아서 딱 좋았다.
주차를 하고 내리니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네 발 자전거였다. 어린이들이 타는 보조바퀴 달린 자전거 말고, 자동차처럼 바퀴가 배치된, 마치 마차 같은 형태의 자전거이다. 우리 첫째가 꽤 어렸을 때 여기 와서 탔던 기억이 났다. 조정 경기장에 놀이터 같은 아이들이 놀거리가 없기도 하고, 오랜만이라 다시 타보기로 했다.
막내가 유모차에 잠들어 있어서 나와 첫째, 둘째만 타고 아내는 유모차를 밀었다. 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은 물가로 난 자전거길을 따라 쭉 달렸다. 반환점을 돌고 아내와 교대했다. 절반쯤 돌아왔을 때였다. 유모차 차양 밖으로 삐져나온 발이 꼼지락 대더니 이어서 ‘애앵’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 애기 배고플 때 됐네.” 아내가 얘기했다. 먹일 만한 곳이 있나 살폈다. 멀지 않은 곳에 벤치가 있어서 벤치를 향해 유모차를 밀었다.
향하는 길에 막둥이는 배가 고프다며 계속 울어댔다. “금방 줄게 조금만 기다려” 속으로 말을 하고 분유가 들어있는 젖병에 준비해 온 온수를 넣고 흔들었다. 아기를 품에 안았는데 눈꼬리에 눈물이 찔끔 맺혀서 반짝였다. 젖병 꼭지를 입에 대니 꼴딱꼴딱 바쁜 소리를 내며 삼킨다. 포근한 온도의 햇살이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 아기의 숨소리를 듣고 있자니 순간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몇 분의 짧고 깊은 평화가 끝났다. 아기를 젖을 다 먹고 트림까지 했는데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터라 비몽사몽 상태였다. 다 먹었으니 아기를 데리고 다른 가족과 합류해야 했다. 그런데 아기에게 아직 잠기가 남아있는 것 같아서 유모차에 순순히 타 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아기띠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메고, 내 몸에 맞춰 사이즈 조정하기가 귀찮았고, 괜히 아기띠를 하면서 유모차를 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믿음으로 아기를 유모차에 눕혔다.
눕히고 처음에는 우는 듯하더니 곧 익숙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 막내가 졸릴 때 내는 “어~ 어~” 소리였다. 이대로 아이를 잠에 확실히 빠뜨리기 위해 벤치 주변을 빙글빙글 서성였다. 몇 번 돌다가 이제 출발해볼까 싶은 때였다. 톡 톡. 누군가가 내 어깨를 쳤다.
우리 엄마의 나이쯤 되어 보이시는 숙녀분이 인사를 하셨다. 그리고 말을 건네셨다. “아기가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안아주면 좋지 않을까요?” 논리적인 인과관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이라 처음 본 사람과의 대화에 순발력이 좋지 않다. 머릿속에서는 ‘우는 게 아니라 아기가 졸릴 때 내는 소리라서 곧 잠들 거예요. 안 안아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라는 맥락의 정제되지 않은 생각이 슉 떠올랐으나, 빨리 정리가 되지 않아 “아, 네. 괜찮아요^^” 라는 말로 축약해버렸다.
그분은 아기 얼굴을 보시더니 “얼굴에 상처가 많네, 아기가 예뻐서 보고 와봤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날따라 또 아기가 재 얼굴을 긁어놨었다. 잘 생각해보니 내가 분유를 먹이러 벤치를 향해 갈 때 옆 옆 벤치에 60대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계셨었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는데, 그 부인께서는 나의 모습이 이렇게 보인 모양이다. 혼자 아기를 데리고 나온 젊은 아빠가(오늘따라 옷도 헐렁한 후드에 청바지 차림에 유독 어려 보였을 것 같다. 마스크도 썼고.) 아기가 울자 달래지 못하고 허둥지둥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시지 않았을까. 게다가 6개월도 안 된 작은 아기다.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시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나는 조금 상황이 급작스럽기도 하고 해서 “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고 자전거 반납 지점으로 유모차를 밀었다.
아내와 위의 두 애들과 합류했다. 매점에서 컵라면을 맛있게 드시고 계셨다. 나는 아내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뭔가 초보 아빠로 오해를 받은 것이 재밌기도 했고, 나는 왜 이렇게 모르는 사람과 대화가 편하지 않을까 하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그렇게 말을 걸면 어떻게 대답할 것 같아?”
“나한테는 말 안 걸었을걸?”
“... 그럴 것 같다.”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직 혼자 아기를 데리고 밖에 다니는 아빠가 많지는 않긴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