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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아저씨 Mar 25. 2022

"스트레스받으면 하지마"라고 할 수 있다면 편하겠지만

[10살 딸] 갑자기 피아노 학원이 싫다니

피아노 학원 가는 거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초등학교 3학년 딸이 싫은 티를 풀풀 내며 말을 꺼냈다. 진심인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말은 곧 나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스트레스의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기본적으로 안정된 루틴이었던 생활에 변화의 냄새가 감지되면 그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두 번째. 솔직히 이 문제에 대해 아이와 바람직한 대화를 통해 최선의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도대체 왜 잘 다니던 학원이 갑자기 스트레스라는 것일까? 


딸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해석하자면 “나 피아노 학원 그만 다니고 싶어”가 아닐까? “스트레스받으니까 그만해야지. 내일부터 가지 마!”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화끈하고 멋진 아빠의 모습인가.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계속 다녔으면 좋겠다.


이유가 스트레스가 아니었다면, 만약 학원에 나를 괴롭히는 애가 있다던지, 차라리 피아노가 너무 싫다면 나는 더 올바른 대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원을 옮긴다던지, 피아노 치는 게 즐겁지가 않다면 굳이 피아노 학원 계속 다니는 걸 고집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내가 관찰한 바로는 피아노는 우리 10살 딸내미에게는 몇 안 되는 취미이자 특기인 편이다. 집에서 하릴없이 있다 보면 피아노를 자주 치고, 엄마 아빠에게도 들어보라고 한다. 딸한테 넌지시 물어봤다. “피아노 치는 게 싫어, 피아노 학원 다니는 게 싫어?” “피아노 학원 가는 게 싫어.”


이러면 나는 오히려 곤란하다. 순간적으로 꼰대 스피릿이 번개처럼 임한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꺼내놓을 말들이 둥둥 떠다닌다. 몇 개 골라서 입을 열고 흘려 내보내면 그만이다. 


“그 정도 스트레스는 이겨낼 수도 있어야 되는 거야”, 

“앞으로 살면서 스트레스받을 일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피아노 학원 가는 게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아, 아빠가 회사 가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아?”, 

“네 친구들만 해도 영어학원, 논술학원, 공부 학원 슬슬 다니기 시작하고 서울에 어떤 애들은 하루에 학원 8개씩 다니는 거 알고 있니? 너는 무슨 피아노랑 수영만 다니면서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러니. 다 네가 다니고 싶어 한 거잖아”


틀린 말일까? 솔직히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옳은 내용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막 해도 되는 건 아니기에 깊은 들숨으로 일단 꾹 눌러 내렸다. 이 얘기를 쏟아냈다가는 아이는 질려버렸을 것이 분명하기에. 나보다 힘도 센 아빠라는 존재가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몰아세우면 학원에 가기 싫던 마음은 뻥튀기되고 피아노에 대한 흥미마저도 싹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일단은 딸에게 딱히 뭐라고 대꾸는 하지 않고 넘어갔다. 문득 다른 아이들은 어떨지 궁금했다. 매일매일 학원가는 게 즐거운 아이들이 있을까? 아닐 것 같다. 학원 안 가는 걸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글쎄… 없지 않을까? 나의 어릴 적의 기억도 한번 소환해 봤다. 10살의 나도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건 TV를 보는 거였다. 나야말로 저녁 먹기 전까지 만화를 요일별로 챙겨보던 어린이였고, 저녁에 시트콤이나 엄마가 보던 연속극도 같이 봤다. 학원을 무단으로 땡땡이친 기억까지 떠올랐다.


파릇파릇한 어린 새싹 같은 아이들은 무지개 같은 꿈을 가득 품고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아서, 부모가 조금만 신경 써서 잘 발견해서 발전시켜주면 그만이라고. 그러다 보니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머리가 조금 컸다고 ‘귀찮다’, ‘싫다’, ‘스트레스받는다’, ‘안 한다’ 같은 어휘를 늘어놓는 애들을 보면 뭔가 실망감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애초에 아이들에 대한 착각이었던 게 아닐까? 아이들도 일차적으로는 몸 편하고, 맘 편한 게 좋을 것 같다. 


분명 학습은 필요하다. 이미 어른이 된 사람 중에 이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무언가를 배우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야 한다. 더욱 준비된 사람일수록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들을 더 나은 것을 위해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는 걸까? 일단은 딸내미가 피아노 학원과의 권태를 이겨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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