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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아저씨 May 13. 2022

나는 아빠가 장애인인 줄 몰랐다

장애는 나에게 특별하지 않았다.

"아빠가 장애인이라서 불편했던 점이나 안 좋았던 경험 없어요?"

K 방송국 <사랑의 가족>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아빠를 촬영하기 위해 우리 집에 왔던 기억이 남아 있다. 정확하지는 않은데 당시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송 관계자는 아들인 나를 인터뷰했고 나에게 던졌던 질문 중 하나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 적이 있었는지 기억을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 아뇨…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인터뷰어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답변이었을 것 같다. 더 이상 이어질 얘기가 없다. 방송에 쓸게 없다는 얘기다. 질문을 하신 분은 당연히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하고 마무리 지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 생각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은 아녔을 테니.


" 그래도 잘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있지 않았어요?"


나는 다시 한번 기억을 훑어보았지만 결국 질문자를 만족시킬만한 내용을 내 기억 저장소에서 발견하지 못하고 그런 경험이 없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오래전 일이라 다른 내용도 인터뷰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내용에 대한 문답은 이렇게 재미없게 마무리되었던 것 같다.


이 질문을 받았던 상황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나에게 꽤나 신선했던 질문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그렇게 대답을 하고 나서 새삼 깨닫게 된 것 같다. 나에게는 아빠의 장애가 특별하거나 불편한 무언가가 전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아빠는 소아마비 장애인이셨다. 장애의 원인이 소아마비이고, 그 결과로 아빠는 평생 걷지 못하는 신체 장애인으로 살게 되셨다. 태어나신 지 두 돌쯤에 발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우리 막내보다 한 살 정도 많을 때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내가 태어나서 만난 아빠는 처음부터 목발 없이는 걸으실 수 없는 장애인이셨다. 그렇기에 장애라는 단어는 사실 나에게 엄마, 아빠, 물, 강아지와 같은 단어처럼 아주 익숙하며 일상적인 단어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장애를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하게 생각하거나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불편한 점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아빠가 퇴근하시면 나는 가방을 들어드리려 차로 가서 아빠의 손이 되어드려야 했고, 아빠가 필요한 것이나 드시고 싶은 게 있다면 아빠의 발이 되어서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보통은 아빠 엄마가 어린아이들에게 굳이 부탁하지 않는 일들을 나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장을 잔뜩 본 무거운 짐을 나른다거나, 대청소를 할 때 무거운 가구를 옮기는 것과 같은 일이다. 도보 이동을 많이 해야 해서 아빠가 휠체어를 타셔야 하면 밀어드리는 것은 나의 역할이었다.


이런 일련의 역할들이 나에게는 불편함으로 정의되지 않은 이유는 너무 익숙하고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 또는 가족의 일원 중 누군가가 장애인이 아니라면 장애란 너무나도 낯선, 어딘가에 존재하는 건 알지만 본 적은 없는 먼 별나라 얘기 같을 수밖에 없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별나라, 달나라에 있지 않다. 누군가의 가족 또는 지인으로 우리들 주변에 생각보다 많이 있다. 다만 그들이 살면서 어쩌다 얻게 된 그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큰 허들이 되어버렸다.


안타깝게도 그 허들은 혼자의 넘을 수는 없다. 노력해서 다리를 움직이게 할 수도 없고, 눈을 뜰 수도 없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게 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빠에게 했던 것처럼 도움이 필요하다. 


사실 가족이 아니라면 가까이서 직접적으로 돕는 것은 어렵다. 나도 아빠 이외에 다른 장애인을 도와 본 경험은 별로 없다. 그래도 우리가 그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사회를 향해 던지는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입장을 공감하고 같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분명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고, 장애인들을 돕는 것이 언젠가는 조금 더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참 어리석게도 이제와서야 아빠가 세상에 하고 싶었던 얘기들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고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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