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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신 Nov 26. 2024

허탈함 속에서 발견한 나

허탈함 속에서 발견한 나


시험이 끝났다. 종이 울리고, 방송이 흘러나오고, 누군가는 펜을 내려놓았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손을 놓은 펜이 책상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걸 멍하니 바라봤다. 마음 한구석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끝이었다.


독서실로 향했다. 책상 위를 가득 채웠던 책과 노트, 손때 묻은 문제지들을 정리했다. 버릴 건 버리고, 챙길 건 챙겼다. 아니다. 사실은 그 모든 걸 버리고 싶었다. 시험 기간 동안 나를 옥죄었던 종이 더미들. 결국, 쓰레기봉투를 들고 와 전부 쓸어 담았다. 남은 건 텅 빈 책상이었다. 그 앞에 서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몇 개월 동안 내 시간과 마음을 채워주던 자리인데, 이렇게 쉽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줄은 몰랐다.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문을 열었다. 평소처럼 켜진 형광등, 평소처럼 정리된 방. 그런데 오늘따라 그 평범함이 너무 낯설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몸이 익숙한 루틴을 찾으려는 듯이.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익숙함을 일부러 외면하고 싶었다.


카페에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동안 감기에 걸릴까 봐, 목이 상할까 봐 늘 참아왔던 그것. 얼음이 잔에 부딪히며 찰랑이는 소리를 들으니 괜히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들었다. 카페 창밖 풍경은 언제나와 똑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 멈춰선 신호등, 하늘 위로 느리게 지나가는 구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나만 달라진 것 같았다.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시험을 준비하며 일부러 듣지 않았던 노래를 틀었다. 아파트. 익숙한 멜로디가 귀를 적실 때, 오래 참아왔던 감정이 서서히 풀리는 기분이었다.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그 길이 좋았다. 아무 의미 없이 걷는 시간이 좋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치킨을 시켰다. 시험 기간 동안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야식. 바삭한 한 조각을 입에 물고 탄산을 들이키는 순간, 세상 모든 억압에서 해방된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상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웃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텅 비어 있었다.


그 공허함은 아마 ‘끝났다’는 감정 때문일 것이다. 시험 준비는 내 삶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 과정은 확실히 나를 살아가게 했다. 이제는 그 과정이 끝났다는 사실이, 나를 흔들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허공에 손을 뻗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생각했다. 이 허탈함도 어쩌면 내 삶의 일부일 것이다. 긴장을 놓아도 된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지금은 멈추어 쉬고, 나를 보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일지도.


밤이 깊었다.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아메리카노의 쓴맛, 노래의 멜로디, 치킨의 고소함. 그 모든 게 오늘 하루를 채워주었다. 비어 있는 책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빈 자리만큼 다시 채워나갈 나를 생각했다.


허탈함은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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