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속으로 시즌3_12화
눈시울이 붉어질 때
재수 시절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노환도 원인이셨지만, 연탄가스 중독 후 후속 조치가 잘 되지 못한 이유도 있다는 생각을 품고 살고 있었다, 또한 할머니를 모시는 친척 입장에서 억울하겠지만 우리 가족 대신 친할머니를 간병하신 작은집 가족을 원망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면 어려운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해주지 않으셨을까? 세월이 흐르니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나도 나이를 먹은 것 때문일까? 아무튼 아프면 입맛이 사라져 살이 짧은 시간에 빠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을 수밖에 없다는 걸 할머니의 임종 직전 확인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하루 직전까지 다시 찾아 인사드릴 날이 오게 되면 살아계실 거라는 믿음으로 학원 수업을 마무리 짓고, 임종 당일 연락도 안 하고-이 당시 휴대폰은 없던 시대이다- 작은 아버지 댁에 찾아갔다. 그러나 굳게 닫힌 문이 좋지 못한 결과를 암시했었던 것일까? 인기척조차 없이 꼭 닫힌 문을 바라보던 나...... 알 수 없는 허무함과 함께 말도 안 된다는 억울함으로 눈물마저 흘릴 수 없었다. 그때, 그 순간, 그 상황을 생각하면 항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후 시도 때도 없이 문득 잠을 잘 때 생각나는 할머니, 누군가에게 할머니의 이야기를 할 때 나도 모르게 왈칵 눈시울이 붉어짐은 그저 반복적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 반응이 되어버렸다.
그런 눈시울이 붉어지는 상황이 최근 요양원에서 다시 발생했다. 같은 생활실을 마주 보고 거주하시던 두 여자 어르신 이야기이다. 이 두 분이 우연찮게도 이틀 차이를 두고 하늘나라로 떠나고 마셨다. 같은 위치의 명찰, 연이은 죽음. 그리고 30년 대 또래, 생일 끝 숫자도 같은 것은 우연일까? 무엇인들 짜 맞추려면 맞춰지는 게 인연이고, 악연이며, 관계일 수 있겠거니. 하지만 이처럼 마음을 다치게 하는 아픔, 슬픔, 아쉬움은 드물었으면 한다. 침상에 붙어 있던 그분들의 이름과 병명, 이제 떼어 내면 다시는 죽어도 그들과 만날 수도, 그분들의 이름을 불러 볼 수도 없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함께 어르신을 돌보시던 선생님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다. 여자 간호조무사 선생님 또한 곡기를 끊으신 스님 한 분과 이날 돌아가신 어르신이 겹쳐져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런 면에서 우린 아직 인연을 떠나보낼 강인한 마음, 요양 시설 근무자로서 초보일 뿐인가? 어쩌면 한 생명을 보내고 맞이하는데 초보이다 베테랑이다. 란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다. 단, 3개월의 인연, 80 평생 사시는 동안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은 고작 2,160시간. 그것을 실제 마주한 시간으로 나누자면 얼마 되지도 않을 시간이지만 죽음이란 이별 앞에선 한마음으로 평생 동고동락한 친구이고 싶다. 요양시설에 근무하는 이상 만남과 헤어짐의 상처와 여운은 반복적이다. 눈시울이 붉혀질 날들도 지속되겠지만 그 순간 진심으로 어르신을 위해 눈물 흘리는 날이었으면 한다. 그저 그분들이 편안히 먼 길 가실 수 있도록 배웅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