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화소년 Apr 13. 2023

진짜 서울을 강남을 만나고 왔습니다

강남 건물 답사 후기

 최근 2년에 걸쳐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신축했다. 재정적으로 건전한 투자를 했고 가족의 도움도 받았으며 소개받은 시공사도 문제없이 공사를 한 탓에 무난히 준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사한 것과는 별개로 무언가 모를 부족함과 아쉬움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완공된 건물 앞에서 그동안 있었던 과정을 복기하려 하니 잘 기억나지도 않을 뿐더러 체계적으로 정리도 할 수 없었다. 비유하자면 동네 축구에서 그저 페널티 박스 즈음에 서 있다가 후방 수비수가 올려준 롱패스를 받아 얼떨결에 골을 넣은 상황이라고나 할까.


다음엔 제법 큰 구장에서 프로 레벨들과 경기를 할 수도 있는데, 빌드업부터 제대로 해서 미드필드에서의 압박과 오프사이드 트랩 등을 모두 이겨내고 페널티 박스에서 공간을 창출하여 골을 넣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미래에 투자한다면 수도권 특히 서울의 토지와 건물을 알아보는 안목을 제대로 기르고 건축과 세무, 법률 등에서 전문가와 협력하여 제대로 된 건축을 하고 싶었다.


첫 건축은 ‘뻥축구’였지만 다음엔 제대로 ‘티키타카’하고 싶다.


하지만 한 번 건축을 경험했다고 해서 초보를 벗어날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단지 경험하기 위해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지을 수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 모 빌딩 중개법인에서 개설한 ‘꼬마빌딩 스터디’가 눈에 들어왔고 5주간 주말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의에 앞서 강남 이면도로의 건물을 답사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임장’이 강의보다 기억에 남았다.


개인적으로 강남권의 지리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고 운전하거나 지하철을 이용하여 다니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로변에 한해서였을 뿐이었다. 4번의 임장을 통해 강남 거리 내부를 보다 디테일하게 답사하며 이제껏 강남의 아니 서울의 자세한 모습은 한참 모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저 소규모 점포 및 원룸 정도가 자리잡고 있을거라 생각했던 이면도로는 실은 거대 도시 서울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코어‘들이 자리잡고 있는 진짜 서울이었다. 몇 주의 답사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음의 4개의 키워드를 통해 건물 투자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을 정리해 보았다.








고급 소비(feat. Private&Premium)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이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제품과 서비스의 특징은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바로 마음을 즐겁고 기쁘게 하고,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어준다는 것이며 다소 높은 비용에도 수요자들은 구매를 주저하지 않는다. 미용실, 네일아트, 필라테스, 플라워샵 등의 뷰티 업종과 오마카세, 이탈리안이나 프렌치 레스토랑 등의 프리미엄 다이닝 등이 이런 특성을 띠고 있으며 여성들의 구매 욕구가 높은 분야이기도 하다(이런 서비스 업소들은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된다). 또한 요즘은 SNS의 영향으로 역세권이 아니어도 서비스가 좋다고 소문나면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찾아간다. 오히려 조용하고 후미진 곳에 위치하면 고급스럽고 있어 보이며 사생활 보호에도 좋다고 생각해 더욱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건물 전체를 고급 맛집으로 단장했다

 


플라워샵과 스시 오마카세가 눈에 띈다

 

프렌치 레스토랑은 직접 셰프의 이름을 내걸고 있었다



첫 답사지였던 청담동은 Private&Premium이라는 가치에 가장 충실한 곳이다. 일단 ‘청담’이라는 이름 자체가 대한민국 최고급임을 인증하며, 지하철에서 거리가 있는만큼 안락하고 조용하다. 답사한 건물들 대부분은 공실이 없었으며 좁은 이면도로에는 고가의 수입차들이 한시가 멀다하고 드나들었다(대부분 발레 파킹이 가능하다). 눈 앞에서 창출되는 GDP규모만 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숫자 놀음을 동반해 보도하는 피상적인 경제 뉴스들은 결코 이런 자세하고도 은밀한 현상까지  보도하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시장의 경제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사무실


흔히 회사라고 하면 강남이나 광화문, 여의도 등지에 있는 대기업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그리고 상당수의 회사 대표들은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정보와 사람이 모이는 좋은 입지에 자신의 사옥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할 수 없이 임차로 들어가더라도 여기저기 떠돌기보단 괜찮은 입지에서 ‘통임대’로 있기를 원한다.

 좋은 입지를 찾는 것은 직원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최근 젊은 직원들은 접근성이 좋고 주변에서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근무처를 선호하는데 이 여건에 맞는 곳으로 강남권만한 곳은 없다. 게다가 강남에 회사가 있다는 사실은 대표에게나 직원에게나 뭔가 있어 보이는 ‘후광 효과’로 작용한다. 사무실 용도로 신축 또는 리모델링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강남에 사무실은 모자란다.


리모델링 후 큰 차액을 남기고 매각한 건물. 사옥 임대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청담동 이면도로에 신축 현장 답사. 사무실 임대가 확정되었다


강남역 이면도로에 위치한 유명 공유 오피스


가로수길 이면의 향수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



학원


분당선 한티역에서 대치 사거리를 지나 영동대로까지 향하는 대로변 거리가 소위 말하는 대치동 학원가의 중심이다. 어디를 가야 하나 고르는 게 힘들 정도로 학원은 많고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대로변에 보인 곳은 일부에 불과했다. 대치동 나아가 서울의 사교육 수요는 실로 엄청났다. 안쪽 골목의 근린상가 건물마다 학원이 들어서 있었고 학원 임대를 놓은 건물도 여럿 보였다. 유튜브 심지어 공중파에도 등장한 스타 강사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각자의 이름을 내걸고 창업한 ‘사장님’ 강사들이 즐비했다. 내가 처음 접한 저 이름들은 어쩌면 학생들에겐 셀럽이고 우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일단 실력을 증명하고 이름을 날리게 되면 다소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학생들은 찾아올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령 인구가 줄어든다 한들 사교육 시장은 여전히 활황일 것 같다. 일타 강사, 맞춤형 강사들이 제공하는 프리미엄 수업을 찾는 학생들의 수요는 줄지 않을 것이다.


별 앰블럼과 강사의 후광 효과로 리모델링 종결


연식이 다소 오래되었어도 입주하려는 학원은 늘 많다



커튼월 외관이 돋보이는 건물. 주요 층에 모두 학원이 입점해 있다



먹자 골목


강남역에서 삼성역에 이르는 테헤란로 대로변엔 수많은 회사들이 있고 이쪽 뒷골목은 강남권의 주요 ’먹자 상권‘이다. 하지만 최근 젊은 직장인과 학생들의 취향은 기성세대 회사원들과 많이 다르다. 소위 ’힙하다는‘ 곳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 주저하지 않고 방문한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 도산공원 및 가로수길 이면도로는 젊은 고객들의 취향을 반영한 세련되고도 매력적인 컨셉의 요식 업소와 카페들로 가득했다. 이 곳에서 만난다는 것은 곧 젊음의 상징이며 고급스런 취향의 표현이 된 것이다. 건물주들이 현재의 공실 상황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미 그 지역들은 이름만으로도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이다.


해장국집이라도 강남이라면 그 위상이 달라진다








 건물은 아파트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아파트 투자는 교통, 학군, 일자리와의 근접성 등을 중요히 여기고 그에 맞는 물건을 고른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및 금융 당국의 금리 책정도 늘 눈여겨 보아야 한다. 결정적으로 투자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신 혹은 가족의 취향이 반영된다.


  이에 반해 건물은 자신의 취향보다는 대중의 선호에 초점을 맞춰 물건을 고르고 투자해야 한다. 성공적인 건물 운영을 위해서는 임차인들의 사업과 장사가 잘 되어야 하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될 만한’ 임차인들을 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 특히 젊은 세대의 소비 성향을 잘 알아야 하며 핫한 트렌드가 무엇인지 상당부분 파악하고 있어야 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그저 아끼고 검소하기만 해서는 좋은 건물을 알아보기 힘들다. 사치를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돈을 쓰는지 잘 알아야 한다. 단지 자본 규모가 커지는 것을 넘어 보다 넓은 시야와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꼭 써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 유행하고 환영받는지는 알고는 있어야 한다.





 



학창 시절부터 각종 스포츠 경기를 보고 즐겨왔고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주요 경기들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챙겨보았다. 세월이 흐른만큼 프로 스포츠와 올림픽 및 월드컵의 연도(대회)별 우승팀, 이름을 날린 스타들의 커리어에 대해서 많은 것을 기억하게 되었고 어지간한 종목의 룰도 상당부분 익혔다. 남들이 스포츠에 대해서 물어보면 어렵지 않게 대답해 줄 수도 있으니 이만하면 나름 스포츠에 대해서는 좀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경기 중계를 ‘풀시청’하고 직관을 다녀보니 그런 자신감은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해당 종목의 개인 기술, 팀 전술, 선수 및 코치의 심리적 특성 등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저 보고 즐길줄만 알았지 짧게라도 경기에 대해 요약하고 분석하거나 핵심을 짚어내는 수준에는 전혀 도달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 후로는 선수와 팀에 대한 세부적인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해설자의 코멘트도 주의깊게 듣는다. 직관할 때는 경기의 승부처라도 짚어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가보고 즐긴다고 해서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건물 투자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철 노선도를 숙지하고 있으며 주요 간선도로나 대로변을 익숙하게 운전한다는 이유로 서울에 대해서 좀 안다고 나름 자부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연일 뿐이었고 스포츠로 따지면 연도별 우승팀 연혁 정도에 불과했다. 세부적인 기교와 전술 및 심리 분석 등은 이면도로 안에 있었던 것이다. 길눈이 밝다고 해서 입지별 가격, 지역별 토지 이용계획, 주변 유동인구의 특성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철저히 답사하거나 로드뷰로 꼼꼼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도시의 진짜 모습에 대해 알 수 없다.



 이번 강의로 건물 투자에 대한 안목이나 식견이 크게 성장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초심으로 돌아가 보다 실용적인 시선으로 지식과 경험을 천천히 쌓아가야 함을 느끼게 해 준 시간들이었다.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할수록 매사에 똑똑하기보다는 겸손해야 하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생존하고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더 치열할 수 없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