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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May 21. 2023

건강해야 성공? 성공해야 건강?

부유함은 어느 정도까지 건강을 커버할 수 있을까

 최근 은퇴한 한 야구 코치는 요즘 젊은 투수들이 몸관리라는 명목으로 훈련량이 크게 줄었음을 지적했다. 물론 무작정 열심히만 하는 훈련은 문제가 있으며 치명적인 부상은 피해야겠지만 프로에서 생존하려면 기본적으로 많은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선수들이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젊은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침을 날렸다. “건강한 몸으로 일찍 은퇴하여 생계를  걱정하느니 몸 좀 상하더라도 부와 명예를 거머쥔 일류 선수로 은퇴하는 게 백번 낫다“고. 어차피 평생 선수할 것도 아니며 야구계에 남더라도 지도자인데 팔이나 어깨 좀 상한다고 한들 일상 생활에 큰 문제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전 축구 선수 안정환에 따르면 사회 통념과는 다르게 운동 선수 출신들이 오히려 잔병이 많고 체력도 떨어진다고 했는데, 선수 때 워낙 혹독하게 훈련하고 경기를 뛴 탓에 신체가 많이 상해서 그렇다고 한다. 안정환의 표현을 빌리면 ’선수 때 너무 갈아넣어서 이제 다 닳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안정환을 비롯한 왕년의 스타 플레이어 상당수는 돈 걱정 없는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것을 바쳐 선수생활을 했고 다행히 성공한 덕분에 안정환은 온갖 잔병치레를 하는 부유한 아저씨로 살아가고 있다.


 며칠 전 서점에서  요즘 장안에 핫하게 소문난 ‘세이노의 가르침’의 목차를 들춰보다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거라고?’라는 제목의 챕터에 눈이 갔다. 대략적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성공하고 돈 많이 벌면 건강 좀 잃어도 괜찮으며 ‘나 죽었소’ 하고 미친듯이 직업과 사업에 매진하여 성공하고 현금으로 몇 억 쌓이면 그때서야 좀 쉬는 것이라고 한다. 세이노는 자신에게 조언을 구해오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이런 조언을 건냈으며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러다 쓰러져 죽는다 싶을 정도로 사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한 병으로 고통받다가 죽는 것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대부분 극심한 빈곤과 과다한 빚 때문이며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할 거냐고 되물었다. 실제로 돈이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을 키우고, 돈을 벌지 못해 가족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계조차 이어갈 수 없는 사례가 적지 않다.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단 말은 못생긴 사람들이, 돈 많으면 불행하단 말은 가난한 사람들이 각각 만들었다(고 믿는다). 과거 20세기 중후반엔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도 할 수 없었으며 그에 따라 겉모습 따윈 가꿀 생각도 못했던 사람들이 다수였다. 제조업과 중화학 공업이 경제 발전의 견인차였던 시절엔 빈부 격차가 심하지 않았고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는 재미에 모두 그저 ‘열심히’ 일했다. 그 과정에서 서른 즈음부터 얼굴이 그을리고 눈가에 주름이 졌으며 넉넉히 배가 나왔다. 그땐 그렇게 대부분이 가난했고 외모가 수수했다. 그러했기에 외모가 아름답고 부유한 소수의 사람들을 보는 다수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못했고 결국 오류가 있는 주장이 한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고 심미적 만족을 제공하는 문화 산업도 융성하기 시작했다. 결국 외모와 돈은  지난날의 ‘누명’을 벗고 ‘순리’대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심지어 요즘은 외적 아름다움이 부를 창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희소성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뛰어난 외모는 높은 지능이나 근면한 성향보다 훨씬 귀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아름다운 외모는 돈이자 권력에 준한다.


 외모와 돈의 경우로 볼 때 건강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심하게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워딩 자체만 봐서는 오류가 있으며 종국에는 건강이 최고임이 증명되어 결국 정의(?)가 승리하는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외모와 돈의 경우 시간이 흐르고 트렌드가 변하면서 과거와 입장이 역전되었고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지만, 건강은 반대의 경우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의술이 크게 발달했는데다가 많은 사람들이 첨단 의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건강의 가역성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아니할 말로 췌장암, 뇌종양, 악성 백혈병, 루게릭병 등 못 고치거나 곧 죽을 병이 아닌 이상 돈으로 무너진 건강을 회복하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하다. 소 잃고 뭐 고친다는 속담은 건강의 경우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죽을 고비에서 살아돌아온 사람들이 제2의 삶을 윤택히 살아가고 있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돈이 많을수록 그 가능성은 크게 높아지는 것이 불편하고도 엄연한 사실이다. 게다가 이런 핫한 의견을 피력한 인물은 거대 인플루언서 세이노이다. 안 그래도 ’세이노가 그렇다면 그런거다’라고 받아들일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 있을 것인데다가 적어도 주장을 전개하는 논리가 엉망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 후광효과를 차치하고라도 설득력이 있다.


여전히 진료 예약은 어렵지만 상급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돈이 없어 병을 키우기라도 하면 그 긴 세월이 끔찍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제껏 통용되어 오던 인생의 우선 순위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물론 냉정히 말해 ‘돈이 있다는’ 대전제가 장착된 다음의 이야기이다. 의술이 좋아져 어지간한 질병 따위는 두렵지 않게 된 세상에서 형편이 여유롭다면 건강이 상할까 싶어 너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굳이 세이노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아도 건강의 실제 중요성과는 별개로 우선 순위는 점점 하락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성공하고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신체적/정신적으로 크고 작은 병 하나 둘쯤은 달고 살면서도 별탈없이 좋은 병원 다니며 잘 살고 있다. 그리고 투병 생활 와중에도 그를 찾아주고 챙겨주는 지인들이 적지 않다. 건강한 신체는 자기 만족을 위해 매우 중요하지만 타인과의 관계 및 직업적 성공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기본값’일 뿐인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여러가지 여건과 맥락을 고려할 때 세이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판단은 여러분 각자의 몫에 맡기겠다.


‘건강은 중요하긴 하나 젊을 때 열심히 돈 벌고 약간 나이들어 챙겨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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