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바람직한 태도에 대하여
이 글은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서적 ’세이노의 가르침‘ 중 일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서술했습니다. 서적은 구매하지 않았고 그런만큼 책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한 이해는 충분하지 못할 수 있음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경제게임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처럼 대부분은 스포츠 기사나 연예 기사 같은 재미난 이야깃거리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정치에 대해 관심이 깊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신문사 인터넷의 자유토론장에 어쩌다 들어가 보면 정말 가관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침을 튀기며 말할 수 있는 분야는 정치, 스포츠, 연예 뿐이다. 특히 많은 여자들이 연예인에 대하여 지독히 관심이 많다. 여성 잡지의 대다수가, 몰라도 되는 그렇고 그런 연예인 기사들로 도배되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당신이 TV앞에서 환호할 때 부자가 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그 TV속의 주인공들임을 깨달아야 한다.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도 당신에게 생기는 것은 땡전 한 푼 없다. 당신은 지금 다른 사람들의 게임에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며 당신 자신이 주인공인 경제 게임에서는 규칙도 모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부자들을 도둑으로 싸잡아 비난한다. 십중팔구 당신은 정치인, 운동선수, 연예인 이름들은 줄줄 꿰차지만 대차대조표는 볼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TV앞에서는 넋이 나가고 신문을 읽으면 꼭 정독을 하면서, 5분도 안 되어 잊어버릴 뉴스거리들에 온 시간과 정신을 바친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고 여전히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부자가 되려면 돈과 친해져야 하는데 사람들은 다른 것들과 친하다. 돈과 친하다는 것은 경제 게임의 법칙을 안다는 것이고 경제의 피가 흐르는 증권, 부동산, 경영, 사업 등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뜻이다.
저자는 사업하느라 그랬는지 평생 연예계에 관심을 둔 적이 없고 또 그랬기에 어쩌면 그렇게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위 ‘아이돌 덕질’하는 사람들의 유형은 의외로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엔 고소득 전문직도 같은 연예계 종사자도 고액연봉 운동선수도 정치인도 있다. 또한 직장과 사업장에서 충실히 자기 일을 한 사람들이 약간의 금전과 여유가 생긴 탓에 삶의 작은 즐거움을 누리려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저자는 마치 부자들은 스포츠 및 연예계와 거리를 둔 것처럼 의견을 전개했는데 그럼 윔블던 및 유럽 챔스 결승 그리고 NBA파이널에 매년 오는 세계적인 셀럽들은 무엇인가? 그 사람들이 과연 그런 취미가 돈의 관점에서만 보면 시간 낭비라는 것을 몰라서 그렇겠는가? 저자는 돈 버는 활동 외에 관심을 갖는 게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행복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돈 버는 것 못지 않게 필요할 때 돈 잘 쓰며 즐기는 것도 인생의 중요한 행복 중 하나이다. 더구나 현대 사회에선 취향이 없는 사람이 사업에 성공하기가 크게 힘들어졌으며 셀럽들이 각종 분야의 트렌드를 이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트렌드에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경제의 동향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덧붙여 직접 확인해 봤는가? 연예인 프로필 줄줄 외우는 사람이 동시에 세계 경제 정세를 훤히 꿰고 있을지 업계에서 인정받는 전문가일지 누가 아는가? 그런 ‘덕후’들을 직접 만나도 저자는 이렇게 신랄하고 냉소적인 비판을 퍼부을 수 있을까?
주식 투자자와 기업 경영인이라면 대차대조표를 비롯한 재무제표를 정확히 해석하고 능숙히 다룰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재무제표의 해석이 부자가 되는 첫걸음이냐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오히려 조직과 사업장에서 관리자 및 CEO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재무제표에 대한 지식과 해석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재무제표의 해석은 부자가 되는 과정 중의 일부 혹은 부자가 된 이후의 결과이지 출발점으로 보긴 힘들다. 재무제표는 사업이 이루어져가는 과정에서 회계 결산을 하게 될 때 필요한 것이며 사업주가 잘 모르면 해당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많다. 사업의 시작에서는 시장의 수요를 파악하여 거기에 맞춘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덧붙여 재무제표 모르고 부자 된 사람들도 많다. 단적인 예로 아파트 갭 투자를 하거나 토지 투자를 하는데 재무제표를 볼 일이 얼마나 있을까?(물론 회계 마인드는 필요하지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돈에 관한 기초 개념부터 배우고 그에 관련된 지식들을 접하는 것부터 출발해서 점차 소득을 늘리고 자산을 불려가야 한다. 하지만 경제 관련 책들을 읽는 것만으로 부자가 되느냐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고소득의 직업과 잘 되는 사업에 ‘올라타지’ 않는다면 그런 독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회에서 자리잡은 사람들이 올바른 타이밍에 필요한 정보와 통찰력을 얻기 위해 ‘보완재’로 책을 읽는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재테크 책을 읽어서 부자가 되는 게 아니고 돈을 벌고 성공한 사람들이 결과물로서 그런 책을 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책은 돈 벌기 위해 의도적으로 읽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불필요한 욕망을 억제하고 잘못된 유혹에 빠지지 않으며 올바른 상황 판단을 내리는데 독서의 효용이 있다. 저자가 그토록 강조한 증권, 부동산, 기업 경영에 관한 책도 그렇게 활용해야 의미가 있다. 책으로 ’득점‘하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실점‘은 막을 수 있다고나 할까?
저자가 대략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스포츠나 연예계 가십거리에 빠져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 취미 활동과 사치성 소비로 소중한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말라, 의미없는 이념 논쟁에 빠지지 말라, 늘 경제에 관심을 두고 경제/경영 관련 지식을 충분히 갖추어라 등등이다. 워딩 자체로만 봤을 때는 백번 옳은 말이고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꼭 실천해야할 지침이기도 하다. 다만 저자는 이런 조언들을 술자리에서 후배들 모아놓고 말로 떠들었거나 개인 SNS계정에 ‘독백’하듯 쓰지 않았고 대중을 상대로 글을 써서 ‘오피셜’로 책을 냈다. 그렇다면 보다 균형잡힌 관점에서 정확하고 정제된 단어와 문장을 쓰고 간단한 주장을 하더라도 사실관계를 정확히 조사해 뒷받침해야 하며 각 사건의 전후관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덧붙여 일부를 전체로 매도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글과 책 그리고 독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다. 이건 저자가 전문 작가이냐 아니냐와는 완전히 별개이다(그게 정 힘들었으면 에디터를 쓰시던가 하지). 또한 위에 인용된 부분엔 나오지 않지만 책에는 비속어와 욕도 가득하다. 내 뜻이 이러니 말이 좀 거칠어도 그냥 들으라는 의도 같은데 글은 말과 다르다. 내용과 별개로 거칠고 예의없는 단어는 적어도 책에선 허용될 수 없다(유튜브나 인스타 숏츠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데 많은 독자들은 거대 인플루언서의 후광 효과에 압도되어서 그러는 것인지는 몰라도 해당 주장을 자신의 입장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옳은 말씀이니 굽신굽신 들을 뿐이다. 심지어 페이스북 친구 한 분은 인용된 대목을 읽고 그동안 자신은 인문 서적만 읽어왔다며 통렬한 ‘참회’(?)를 하시기도 했는데 그걸 보고 정말 안타깝고 할 말이 없었다. 인문 서적 그 자체에 꽂혀 세상 물정도 모르고 책벌레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 분은 나름 자기 커리어도 성공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으며 다양한 경험도 많이 하며 여러 분야의 사람도 만나며 살고 있다(자세히 서술하기는 무리이나 부자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돈 없이는 못할 경험들임은 분명했다). 그동안 읽었던 인문 서적들이 분명 자신의 의사 결정과 상황 판단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을텐데 그런 것은 까맣게 잊고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말에 그렇게 위축될 필요가 있었을까.
훌륭한 조언이라도 결국은 남의 말이다. 그리고 냉정히 말해 저자는 독자에게 아무런 관심도 애틋함도 안타까움도 없다. 그런 점에서 조언을 접하는 우리 독자들의 태도도 좀 달라져야 한다. 아무리 공감을 한다한들 어디까지나 참고로 삼아야지 ‘복붙’할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에 대해 무엇보다 이해가 가지 않은 점은 책까지 써서 많은 이야기를 전달했으면서 자신과 사업체의 정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사회악을 전파한 것도 아닌데 떳떳하지 못할 이유를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짖궂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말하는 건 시시하고 재미없으니 본인을 신격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아닐까? 물론 저자는 지금 대중에게 거의 신이 되어 있고 그런 점에서 해당 전략(?)은 일부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난 좀 다르다. 신보다는 같은 사람이 들려주는 차분하고도 진정성 있는 얘기가 더 듣고 싶다.